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배움의 기쁨/책속의 한줄

송강 역해, 『송강스님의 다시 보는 금강경』을 읽다.

아진돌 2021. 9. 19. 09:45

송강 역해(2017), 『송강스님의 다시 보는 금강경』, 경기도 안양시 : 도서출판 도반, 초판발행 2017.2.16.

 

2021년 9월 19일에 시우 송강(時雨 松江) 스님께서 불교신문에 연재했던 것을 책으로 발간한 『송강스님의 다시 보는 금강경』을 일독 하였다. 그동안 새벽에 일찍 눈이 떠지면 틈틈이 읽었던 경전이다. 지난해에 정토불교대학 공부할 때 도반께서 선물로 주신 경전이다. 머리글에서 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불교신문에 연재한 것이기에 출가 수행자와 재가불자는 말할 것도 없고, 불교에 문외한인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로 쓰려고 노력”한 경전이다.

 

불교가 다른 종교와 가장 크게 다른 것은 믿음을 강조하기보다는 깨달아 부처가 되기를 권한다는 점이다. 중생이 반야지혜를 쓰지 못하는 것은 번뇌 때문인데, 이 번뇌마저도 스스로가 만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금강경』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경전은 구마라집 스님의 한역본을 기저로 번역하셨다고 한다. 구마라집 스님의 한역본이 오랜 세월 필사로 전송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들을 바로잡은 송강 편역 『금강경』을 중심으로 본문 강의를 전개한다고 밝히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지 과거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식보다는 지혜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지식이란 엄격히 말해 과거에 많이 일어났던 일이거나 과거에 연구했던 결과들이고, 지혜란 낯선 상황에 대해 직관적으로 분석하고 통합하여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미래는 지식으로만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많다는 말씀을 해주신다.

 

『금강경』을 현대 국어로 가장 잘 번역한 경이라고 생각된다. 제25분 <化無所化分>에서 부처님을 숲으로 비유하여 해설하신 부분은 압권이다. 매 분(分)의 제목 밑에는 스님이 인도와 중국 등에서 직접 촬영하신 사진들을 실어주셔서 불교미술의 일면을 감상하는 재미도 있다. 제26분의 한역에 오류가 있음을 지적한 내용도 명쾌하다. 6가지 한역본을 비교하여 산스크리트 원전에 충실하게 바로잡아 놓았다.

 

『금강경』에서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자주 언급되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에서 人相을 ‘사람이라는 관념’으로 번역한 것은 조금 아쉽다. 현대 한문에서는 人이 주로 사람의 의미로 쓰이지만, 고대 중국어에서는 我와 대비되는 타인, 남의 뜻이 강하므로 다른 번역본들과 같이 ‘남이라는 관념’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금강경의 핵심인 범소유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에서 모든 이라는 뜻의 諸를 相非相 전체를 꾸미는 것으로 해석하여 ‘만약 모양과 모양 아님을 모두 본다면’으로 해석한 부분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된다. 다른 번역본들의 해석을 따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118쪽의 “是名佛法”이 “是名不法”으로 오타가 난 것은 옥의 티이다.

 

『금강경』을 공부할 때마다 금강경의 핵심은 제1분에 있다는 설명을 듣고 이해는 되지만, 아직은 쿵 하고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좀 더 공부하고 마음이 맑아지면 제1분을 읽으며 부처님을 뵐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경전의 마지막 제32분의 설명 부분의 마지막 글을 마음에 새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해할 대상이 아니라 실천할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