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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핑커의 『빈 서판』을 읽다.

아진돌 2021. 8. 27. 16:35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지음, 김한영 옮김(2020), 『빈 서판』, 서울 : ㈜사이언스 북스, 1판1쇄 2004.2.16. 2판1쇄 2017.11.30. 2판4쇄 2020.6.16.

 

2020년 8월 14일부터 8월 23일까지 두 번의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한번의 월요일에 걸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교수의 『빈 서판』을 읽었다. 이 책은 무려 941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대충 읽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스티븐 핑커의 『The Blank Slate: The Modern Denial of Human Nature』 2016년도 판의 번역본이다. 저자 스티븐 핑커는 1954년에 캐나다 몬트리올의 영어권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낳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언어 심리학과 진화 심리학을 강의하고 있다. 스티븐 핑커의 블로그(https://stevenpinker.com)에 가면 그의 논문도 다운로드 가능하고 유튜브 강의도 시청할 수 있다.

 

이 책은 인간 본성을 다룬 책이다. 빈 서판(Blank Slate)은 인간 본성이 외부 환경에 의해서만 형성된다는 이론의 기본이 되는 요소를 말한다. 저자는 인간의 뇌에 대한 현대 생물학의 연구 결과들을 믿으며, 진화 심리학을 강의하는 교수이다.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개념을 책의 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유전적 요인에 의한 인간 본성에 대한 금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는 인간 본성의 개념이 현대 생활에 미치는 도덕적, 정서적, 정치적 영향에 관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인간 본성을 위험한 개념으로 보게 된 역사를 추적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인간 본성의 개념을 얽매고 있는 도덕적, 정치적 올가미를 벗겨볼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저자는 극단적인 ‘본성’ 입장에서 극단적인 ‘양육’ 입장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진리는 그 중간 어딘가에 놓여 있다.”라고 말한다.

 

나는 방송대에서 청소년교육을 공부하면서 또한, 리처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의 저서들을 읽으면서 인간의 본성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저항감 없이 받아들였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사주명리학을 공부하면서도 유전적 요인에 의해 타고난 본성과 성장 환경이 같이 영향을 줄 것으로 믿고 있다. 이 책을 읽어보니 서구에서 특히 미국에서는 유전적 요인에 의한 인간 본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크게 이슈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의 사고방식과 교육, 정치, 철학 등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대-기독교적 신앙과 사고방식에 얽매인 서구사회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적 발견에 당혹해하는 학자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자는 빈 서판의 소멸이 최초의 우려만큼 불안하지 않고 어떤 측면에서는 혁명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을 입증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11장에서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주는 정서적 위안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뇌가 죽었을 때 우리의 존재가 끝난다면 삶은 목적을 상실하는가? 오히려 매 순간을 감각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소중한 선물이라는 깨달음보다 인생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논어 선진편 11장에 보면, 자로가 공자님께 죽음에 대해 묻는 말이 있다. 공자님은 “삶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라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 때문에 사후세계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없으므로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비난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공자님이야말로 죽음을 제대로 알고 계셨던 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임신이 되면 영혼이 이 세계에 도착하고 죽으면 영혼이 떠나간다고 믿음 속에서 모든 도덕적 판단과 권선징악적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죽은 몸에는 더 이상 마음이라는 생명력이 담겨 있지 않는다는 것은 충격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오늘날 과학은 이른바 영혼이라는 것(감정, 이성, 의지의 그릇)이 뇌의 정보처리 활동이고 뇌는 생물학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 신체기관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대 과학은 색즉시공 공즉시생(色卽是空 空卽是生)이라는 반야심경의 말씀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후생 유전학까지도 크게 비판하고 있는 이 책을 읽으며 의미 있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 과학의 연구 결과를 믿으면서도 마음 속에서는 영혼의 존재를 믿고 지옥과 천당이라는 사후 세계가 있다는 가정하에 형성된 사회 관념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당연한 질문이 있다. “마음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 앞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 중의 하나는 그것이 도덕적 허무주의를 낳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다.

 

제20장 예술과 인문학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는 이 장에서 예술과 인문학의 침체 원인을 진단하고 그 부흥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겠다고 하였다. 1910년대의 모더니즘은 예술가들이 수천년 동안 인간의 심미안을 충족하기 위해 사용했던 모든 기술들을 하루 아침에 내팽개쳤다고 말한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초원과 같은 그림을 더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심미안을 내팽개친 것이다. 회화에서는 사실주의적 묘사가 물러나고, 색채와 형태를 괴상하게 왜곡하는 기법이 그 자리를 대신하더니 추상적이 도형, 격자 무늬, 물방울, 얼룩 무늬가 등장했다고 말한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포스트 모더니즘은 훨씬 더 적극적인 상대주의를 앞세워 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러 가지이고, 그중 어느 것에도 특권을 부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음을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빈 서판은 매력적인 관점이었다. 그것은 인종차별, 성 차별, 계급적 편견을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들 것을 약속했다. (중략) 마음, 뇌, 유전자, 진화를 연구하는 현대 과학은 빈 서판이 그릇된 이론임을 갈수록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과학과 지식 세계의 품위를 떨어뜨려서라도 빈 서판을 구조하려는 보수적이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끝에 첨부된 “2016년판 발문”에서 인간 본성은 문제이기도 하고 답이기도 하다는 제목을 달고 있다. 「최후의 성찰」이라는 마지막 절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고약한 면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인간 본성은 문제이기도 하지만, 또한 답이기도 하다는 것”이라고 끝을 맺고 있다.

 

현대 과학이 밝혀내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 결과들이 일반인들에게 왜곡되게 인식되어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을까라는 걱정도 해보았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추어 교육, 철학, 종교,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깊은 성찰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어찌 되었던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것들은 인간의 본성은 선하며 인간 스스로 파멸을 낳도록 진화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불교에서는 최초 석가세존의 말씀에 충실하고 공자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되지 않게 제대로만 이해하고 따른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동양 철학과 동양 종교 등 동양학이 인류 발전을 위해 크게 공헌하는 날이 오리라는 점을 확신한다.

 

지금 읽고 있는 홍정식 교수께서 『반야심경』 해제에서 “사실을 알고 보면 삶이 덧없기 때문에 귀중한 것이다. 꽃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는 것 때문에 삶의 존엄이 있고 고마움이 있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 책의 역자가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처럼 “가난한 지식인의 낡은 서가에 오랫동안 꽂혀 있기를 조심스럽게 기대할 뿐이다”라는 말이 크게 공감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