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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기쁨/책속의 한줄

계연수 편저, 안경전 역주(2012),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읽다.

아진돌 2021. 8. 15. 15:09

계연수 편저, 안경전 역주(2012), 『환단고기(桓檀古記)(보급판)』, 대전 : 상생출판, 초판14쇄 2013.11.12.

 

2021년 8월 1일부터 8월 14일까지 2주에 걸쳐 『환단고기(桓檀古記)』 보급판을 읽었다. 책에 기록된 구입일자를 보니 2014년 3월 15일이다. 2014년에 책을 산 후 읽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우리의 고대 역사서이면서도 위서 논란에 휘말려 있고, 역사학계에서는 외면하는 듯한 역사서이다. 증산교에서 주도적으로 북카페 등을 통해 우리 고대사 찾기 차원에서 알리고 있는 책이다. 어쩌면 증산교에서 강조하다 보니 한층 더 위서 논쟁이 심한지도 모르겠다.

 

고구려 역사까지도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보면서 나는 설령 만에 하나라도 이 책이 위서이더라도 우리 스스로 위서라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보며, 위서일지라도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성리학만을 정통 학문으로 간주하고 우리의 고대 역사서 등을 모아 없애버린 조선의 태종부터 세조까지의 무모한 분서(焚書) 정책으로 인하여 수많은 역사서가 사라진 것이 너무나 아쉽다. 더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조선 왕실에 보관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리의 고대사를 다룬 역사서들이 모조리 행방불명되고 일제의 입맛에 맞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만이 역사서로 남아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는 삼국사기가 가장 오래된 우리의 역사서이고, 삼국유사를 통해 고조선 역사를 단군신화로 배웠고 머리에 세뇌가 되어 있어서 “단군신화”라는 말이 저절로 되뇌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주변국들은 없는 역사도 날조하여 자기네 역사를 만드는데, 우리의 선조들의 기록을 위서라고 몰아붙이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역주자는 환단고기 완역을 계기로 한국강단학계의 집요한 『환단고기』 위서론 시비에 종지부를 찍고, 한민족 9천년사의 참모습과 태곳적 인류원형문화의 정수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桓檀古記』는 1911년에 운초 계연수(雲樵 桂延壽, 1864-1920) 선생이 묘향산 단굴암에서 일제의 총칼을 피해 피눈물을 삼키며 자신이 찾아낸 역사 원본들을 『桓檀古記』라는 이름으로 엮어낸 우리 민족의 고대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의 전편에는 역주자가 쓴 『桓檀古記』 해제가 제Ⅰ장부터 제Ⅳ장까지 기술되어 있고, 뒤이어 우리의 고대사를 기록한 역사서들이 원문과 함께 번역글이 실려 있다. 신라 시대 고승이었던 안함로(安含老, 579-640)가 지은 三聖紀全(삼성기전) 상편과 고려 때 인물로 추정되는 원동중(元董仲, ?-?)이 지은 三聖紀全 하편, 고려 공민왕 때 수문하시중(오늘날의 국무총리)을 지낸 이암(李嵒, 1297-1364)이 지은 檀君世紀(단군세기), 이암의 동지이자 고려말 충신인 범장(笵樟, ?-?)이 지은 北扶餘紀(북부여기), 조선시대 찬수관을 역임한 이맥(李陌, 1455-1528)이 지은 太白逸史(태백일사)가 실려 있다. 계연수 선생이 환단고기를 편찬할 때까지만 해도 양반가들에는 우리의 고대사를 기록한 역사서들이 남아 있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조선시대에도 태종 때부터 세조 때까지 전국에서 수거했던 역사서들이 일부는 왕실에 비기로 남아 있었던 것 같다. 태백일사에서 출처로 언급된 역사서만도 무척 많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고대사를 기록한 역사서들이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단군세기를 보면 국조 단군왕검이 즉위한 기원전(BCE) 2333년부터 47세 단군 고열가께서 제위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 기원전 232년까지의 기록이 즉위년도와 재위 기간 및 주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중국의 사마천 등 역사가들의 중화주의 역사관과 일제에 의해 왜곡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귀중한 역사기록들을 접할 수 있다. 한사군에 대한 왜곡과 진한·번한·마한 등 삼한의 위치 등을 보면서 우리가 배웠던 역사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황하문명보다도 앞선 홍산문화 유적지가 발견되면서 유적과 발굴 결과 등을 자신들만 독점적으로 연구하는 중국의 자세와 우리의 역사를 너무나도 심하게 왜곡시킨 일제의 식민사관의 후유증에 화가 많이 난다. 개천절이 바로 단군왕검께서 즉위하신 후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기원전(BCE) 2333년 10월 3일을 기념하는 날로 정한 것과 이제는 통일신라 시대라는 시대 구분 대신 남북국시대라는 시대 구분이 일반화되는 것으로 위안을 삼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의 고대사를 읽으면서 나는 몇가지 사실들을 추가로 알게 되어 엄청 기분이 좋았다. 음양오행과 십간 십이지(十干 十二支)에 대한 출처와 원래의 의미를 접할 수 있었고, 하도와 낙서가 발견된 송화강과 발견년도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주역 이전에 환역(桓易)과 희역(羲易)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고, 『한서』「지리지」의 기록만을 믿고 3개 조항만 알려져 있다고 배웠던 고조선의 禁八條(금팔조)의 8개 조항을 모두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 민족의 삼대 경전인 天符經(천부경), 三一神詁(삼일신고), 參佺戒經(참전계경)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훈민정음 이전에 한글의 원조라 할 수 있는 3세 가륵단군 때 만든 가림다(加臨多) 문자와 숫자를 표기한 산목과 전목을 알게 되었다.

 

『환단고기』라는 우리의 고대사 역사서가 종교 단체에서 주관하여 알리고 있어서 혹시라도 거부감을 갖고 읽어보기를 주저하거나, 일제 식민사관에 찌들어 버린 사고방식 때문에 우리의 잃어버린 고대사 찾는 일을 망각해 버린 분들이 계시다면 편견을 내려 놓으시고 꼭 이 책을 읽어 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내용을 보시면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될 것이다. 설사 위서라 하더라도 꼭 읽어 보시길 추천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내용을 아신다면, 설령 『환단고기』가 위서라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잃어버린 고대사를 다시 찾기 위해서라도 꼭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