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영축산 통도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1. 10. 23. 19:53

2021년 10월 17일(일)에 대한불교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답사계획에 따라 15번째 답사지로 경남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하북면 지산리 583)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에 다녀왔다. 지난 2021년 6월 27일(일)에 제14교구 부산 범어사를 다녀온 후 거의 4개 월만에 25개 교구 본사 답사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 동안 코비드19가 한층 더 기승을 부리고 나도 허리가 아파서 여행을 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답사를 떠나며 길을 잘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가는 길이었고, 식사를 하고 통도사로 들어가겠다고 계획했다가 얼떨결에 영축총림문을 통과하여 난감했었는데 성보박물관 옆에 한송정(寒松亭)이라는 식당이 있어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는 등 좋은 일이 생겨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입었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바로 옆에 있는 성보박물관을 들르려 했으나 코비드19로 관람객들을 제한하면서 한참을 기다려야 입장이 된다하여 포기하였다.

 

지난 9월 18일(토)부터 오늘 10월 17일(일)까지가 개산 1376년을 기념하는 개산대재(開山大齋) 기간이라 사찰내가 갖가지 국화꽃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스님들의 사진 전시회도 열리고 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서 대부분의 사진 속에는 관광객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통도사는 예전에 영남알프스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둘러보았던 불보사찰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금강계단이 있어서 항상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하였던 절이라 오랜만에 왔어도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이번에는 금강계단 안쪽으로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통도사의 가람배치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정점으로 동쪽으로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고 있는 지형을 따라 자리잡고 있다. 주요 금당들은 영축산을 배산으로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일주문에서부터 대웅전까지는 세 개의 문 즉,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등 세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일주문 주변에는 성보박물관, 종무소 등이 있고, 일주문을 지나 서너 계단을 올라가면 천왕문을 만난다. 일주문과 불이문 사이의 하로전에는 범종루, 극락보전, 영산전, 약사전 등이 있다. 극락보전에는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이신 아미타 부처님과 함께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천왕문 옆의 범종루 앞에는 토지신을 모신 가람각이라는 전각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불이문과 대웅전 사이의 중로전에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명전, 미륵불을 모신 용화전,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이 있다. 개산조당과 지장율사의 진영을 모신 해장보각(海藏寶閣)이 있고, 석가여래 영골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의 내력을 소개한 세존비와 세존비각이 있다. 용화전 앞에 있는 봉발탑이 있다. 통도사 팜플렛에 따르면 부처님의 의발을 56억 7천만년 뒤에 출현할 용화전의 주불인 미륵불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라고 한다.

 

중로전보다 조금 높은 상로전에는 통도사의 중심 건물이며 국보 제290호인 대웅전과 금강계단이 있다. 건물 뒤쪽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어서 내부에는 불상을 따로 봉안하지 않고 있다. 동쪽에는 대웅전, 서쪽에는 대방광전, 남쪽에는 금강계단, 북쪽에는 적멸보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안내문에 따르면 금강계단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친필로 유명하다고 한다. 상로전에는 금강계단과 함께 명부전, 설법전, 응진전 등이 있고 삼성각과 신령각이 있다.

 

통도사(通度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구 본사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영축총림이다. 삼국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로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佛寶·法寶·僧寶로 일컬이지는 세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불보(佛寶) 사찰이다. 통도사 홈페이지(http://tongdosa.or.kr/index.php)의 소개글에 따르면, 통도사 창건의 기본정신은 부처님 사리(舍利)를 봉안한 금강계단(金剛戒壇)에 있다. 이 계단은 통도사의 정신적인 근거가 되기도 하며 창사후 가장 중요한 기록을 마련하고 있다. 그래서 통도사 역사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자료들은 어느 것이나 통도사의 변화에 대해 기술하기보다는 바로 금강계단의 변천과 그역사를 강조하기 때문에 통도사 창건은 금강계단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다고 하겠다.

 

『삼국유사』 제3권 탑상(塔像) 제4 전후소장사리조(前後所將舍利條)에 의하면 “선덕왕때인 정관(貞觀) 12년 계묘년(癸卯 643)에 자장율사스님께서 당에서 모시고 온 부처님의 두골(佛頭骨), 부처님의 치아(佛齒)등 사리(佛舍利) 100립과 부처님이 입으시던 비라금점가사(緋羅金點袈裟) 한 벌이 있었는데 그 사리를 3분하여 일부분은 황룡사탑(皇龍寺塔)에 두고 일부분은 태화사탑(太和寺塔)에, 일부분은 가사(袈裟)와 함께 통도사 계단에 두었으며”라고 하였다. 계단은 2층으로 상층(上層) 가운데에 범종 모양을 하고 있는 석개(石蓋)를 안치하였다. 이 내용은 곧 통도사의 불사리 금강계단과 함께 부처님의 친착가사(親着袈裟) 봉안 사실을 전해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본래 금강계단이 축조되기 이전 통도사는 큰 못이었다. 창건주 자장스님께서는 못을 메워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통도사를 창건하셨다.

 

자장스님께서 당나라 오대산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문수보살이 승려로 화현하여 가사 한 벌과 진신사리 1백과, 불두골(佛頭骨), 손가락뼈(指節), 염주, 경전 등등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것들은 내 스승 석가여래께서 친히 입으셨던 가사이고 또 이 사리들은 부처님의 진신사리이며, 이 뼈는 부처님의 머리와 손가락 뼈이다. 그대는 말세(末世)에 계율을 지키는 사문(沙門)이므로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주노라. 그대의 나라 남쪽 축서산(鷲栖山 : 영축산의 옛이름) 기슭에 독룡(毒龍)이 거처하는 신지(神池)가 있는데, 거기에 사는 용들이 독해(毒害)를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그대가 그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설치하고 이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삼재(三災 : 물, 바람, 불의 재앙)를 면하게 되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천룡(天龍)이 그곳을 옹호하게 되리라.”이 후 스님은 귀국하여 나쁜 용들이 산다는 못에 이르러 용들을 위해 설법을 하여 제도하고 못을 메워 그 위에 금강계단을 쌓았다.

 

사찰에서 스님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스님에게 항복한 독룡은 모두 아홉 마리였는데, 그 가운데서 다섯 마리는 오룡동(五龍洞)으로, 세 마리는 삼동곡(三洞谷)으로 갔으나 오직 한 마리의 눈먼 용만은 굳이 그곳에 남아 터를 지키겠다고 굳게 맹세하였으므로 스님은 그 용의 청을 들어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머물도록 했다고 한다. 그곳이 지금의 구룡지인데 불과 네댓 평의 넓이에 지나지 않으며 깊이 또한 한 길도 채 안 되는 조그마한 타원형의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어들지 않는다.(출처: 통도사 홈페이지 http://tongdosa.or.kr/index.php - 창건과 역사).

 

(하로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일주문)

(불이문을 지나면 중로전)

(금강계단이 있는 상로전)

(하로전 영역에 있지만 일주문 밖의 전각과 풍경)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