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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모악산 금산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1. 11. 20. 11:50

2021년 11월 13일(토)에 대한불교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답사계획에 따라 17번째 답사지로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금산리 39)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에 다녀왔다. 금산사는 삼국시대 백제의 제29대 법왕 원년(599년)에 창건되었으며, 법왕이 일찍 죽고 600년에 즉위한 제30대 무왕 당시 건립된 사찰이다. 모악지맥에 있는 모악산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모악지맥(母岳枝脈)은 호남정맥의 묵방산(538m)에서 북쪽으로 약1.3km, 옥정호 초당골에서 약 1km 떨어진 355m봉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하여 새만금 간척지까지 달리는 지맥이다. 모악산은 1971년 전라북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모악산(母岳山)은 전라북도 김제시와 완주군에 걸쳐있는 높이 793m의 산이다. 모악산 서쪽으로는 넓은 김제평야가 있고 지금은 새만금 간척지를 내려다보는 산으로 전주의 상징이기도 하다. 금산사가 있는 금산면은 예부터 사금(砂金) 산지로 이름이 높았다고 한다. 넓은 김제평야가 있고 사금 산지인 풍요의 땅에 있는 금산사는 역설적으로 미륵신앙의 성지이다. 농업과 사금으로 유명한 이곳이 풍요의 땅이 아니고 민중들에게는 수탈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곳이었다. 얼마나 많은 수탈이 이루어졌으면 현세보다는 미래를 바라보는 미륵신앙의 성지가 되었을까? 금산사 초입에 있는 초라하고 작은 한 칸짜리 전각 안에 어둠컴컴하게 모셔져 있는 석조 미륵불 입상을 보면서 마음이 찡하다.

 

금산사는 후삼국시대에 후백제 군주 견훤이 아들 신검 등에 의해 금산사에 감금되었다가 탈출하여 왕건에게 투항한 사건으로도 유명한 사찰이다. 10명이나 되는 왕자들 중에서 넷째 왕자 금강(金剛)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다가 첫째인 신검(新劍)이 그 아우를 죽이고 부왕 견훤을 금산사에 감금시킨 것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미륵전, 금강계단, 적멸보궁 등을 참배하고 대적광전에서 사시 예불에 참석하였다. 대적광전은 다섯 여래와 여섯 보살이 모셔져 있는 장엄한 전각이다. 팔작지붕에 다포식 건물인 현재의 건물은 1990년에 복원된 건물이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으나 1986년에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다시 지은 전각이다. 정유재란(1597년) 때 금산사의 모든 전각들이 불에 탄 후 인조 13년에 절을 중창하면서 대광명전, 약사전, 극락전에 모셨던 불상들을 모두 한 곳에 모신 대적광전은 전면 7칸, 측면 4칸의 28칸이나 커다란 전각이며, 넓은 마당을 앞에 두고 있다. 왼쪽에서부터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약사불이 있고 이들 사이에 보살들이 모셔져 있다. 맨 왼쪽부터 대세지보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석가모니불, 보현보살,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노사나불, 월광보살, 약사불, 일광보살이 모셔져 있다.

 

금산사 홈페이지(https://www.geumsansa.org/)에 따르면, 금산사는 백제 법왕 1년(599년)에 나라의 복을 비는 자복사(資福寺)로 창건된 것으로 전한다. 금산사가 대사찰의 면모를 갖춘 것은 남북조시대에 통일신라의 진표율사가 주석하며 시작되었다. 진표율사는 미륵전을 짓고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였으며 해마다 단(壇)을 열어 법시(法施)를 널리 베풀었다.

 

1935년 3월 큰 화재로 미륵전 본존불이 전소되었다. 당시 공모전이라는 파격적인 방식(불모 일섭스님 등 당대 유명 작가 5인 응모)으로 진행되었는데, 일본 동경대에서 수학하고 갓 돌아온 김복진씨가 당선되어 복원불사가 시행되었다. 김복진은 서양조각을 공부한 근대 조각가이다. 그는 새로운 재료인 석고를 이용하면서도 전통을 계승한 미륵대불을 완성하였다. 1961년에 금산사의 주지로 부임한 태공 월주 스님은 미륵전을 비롯하여 많은 불사를 이루었고 여러 스님들의 노력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만들어지면서 17교구의 본사로서 조계종의 종헌과 종지 종풍을 따르고 있다.(출처 : 금산사 홈페이지 – 창건과 역사)

 

대적광전 앞의 마당 우측에는 3층으로 웅장하게 지어진 국보 62호인 미륵전이 있다. 외형상으로는 3층 목탑 양식으로 지어져 있고 내부는 통층으로 되어 있고, 거대한 미륵불과 함께 법화림 보살과 대묘상 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외부에는 미륵전, 용화지회, 대자보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미륵전 옆으로는 장방형의 금강계단이 있고, 금강계단 중앙에는 부처님 사리를 모신 종 모양의 탑이 있으며, 사리탑을 향해 참배할 수 있는 전면 3칸, 측면 3칸의 적멸보궁이 있다. 금강계단에는 오층석탑이 있다. 본래는 9층 석탑이었으나 현재는 5층만 남아 있다고 한다.

 

앞마당에는 연꽃 모양으로 조각된 화강암 노주가 있고, 검은 색의 육각 다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벼루를 만드는 점판암으로 제작된 것이 특이하다. 삼성각에 모셔져 있는 나반존자상의 인자함이 이채롭다. 다른 어느 절에 있는 나반존자상보다도 인자한 모습으로 참배객을 바라보신다. 종각에 놓여 있는 안내판의 글도 눈길을 끈다.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명령조 안내문 대신 “들어가지 않는 곳입니다”라는 문구가 마음을 포근하게 해 준다. 절 입구에 있는 커다란 당간지주와 작은 전각에 안내문도 없이 모셔져 있는 석조미륵입상도 놓치지 말고 보시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