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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모악산 귀신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1. 11. 20. 11:56

2021년 11월 13일(토)에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6길 40(청도리 81)에 있는 귀신사(歸信寺)에 다녀왔다. 귀신사는 사찰 이름이 특이하지만 한자명을 보면 믿음으로 돌아온다는 좋은 이름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 중 하나이다. 모악사 남쪽 기슭에 있으며 한때는 금산사를 말사로 두고 있던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깊은 골짜기였을 절터이지만 지금은 포장도로에 인접해 있다. 절 입구의 계단에 서서 내려다 보면 아래 쪽 민가들이 있는 곳이 모두 사찰 경내였겠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맞배지붕에 다포식으로 지어진 대적광전에는 높이가 3미터나 거대한 비로자나불과 약사불,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금산사와 전주 송광사 등에서 보듯이 호남지방의 불상들이 대부분 장엄하고 커다란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대적광전 뒤에는 석탑과 사자 모양의 석수(石獸)가 있다. 현재의 석탑은 3층 석탑으로 되어 있으나 안내판에는 그냥 석탑이라고만 소개하고 있다. 절이 폐허가 되면서 원형을 잃은 듯하다. 석수는 사자상으로 등위에는 남자의 성기를 닮은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귀두 부분은 한쪽이 닳아져 있다. 아마 아들 낳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떼어 간 것이리라.

 

금산사 홈페이지(https://www.geumsansa.org/)에 따르면, 귀신사는 676년(신라 문무왕 16년) 의상(義湘) 대사가 창건하였다. 이때의 절 이름은 국신사(國信寺)로서, 당시의 규모는 전하지 않지만,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崔致遠, 857~?)이 그의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을 이곳에서 쓴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까지 대사찰로서의 면모를 유지했던 듯하다. 「법장화상전」에는 ‘國信寺’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절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 등의 유물을 보아서도 이 무렵의 귀신사는 상당히 큰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귀신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다른 이야기도 있다. 즉 599년(백제 법왕 1) 왕실에서 원당(願堂)으로 창건하였고, 지금 경내에 남아 있는 석수(石獸)도 백제 왕실의 자복사찰(資福寺刹)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이라는 견해이다. 또한 후대의 기록이지만 조선 후기에 기록된 자수 무경(子秀無竟, 1664~1737) 스님의 「전주무악산귀신사사적사인(全州毋岳山歸信寺事蹟詞引)」에도 백제 왕실의 원당이었다는 기록이 있다.(출처 : 금산사 홈페이지 – 말사 안내-귀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