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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등명락가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2. 9. 2. 21:12

2022년 8월 29일에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괘방산길 16에 있는 등명락가사에 다녀왔다. 등명락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월정사 홈페이지의 말사 안내에는 낙가사(洛伽寺)로 소개되어 있다. 일주문 밑에는 대한민국정동이라고 쓰여있는 돌탑이 있고 위에는 정동을 지칭하는 나경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일주문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오른쪽에는 관일루를 통해 들어가는 약사전 영역이 있고, 왼쪽에는 불이문을 지나 숙소로 사용되는 누각을 통해 진입하는 대웅전 영역이 있다. 약사전이 있는 곳은 전면에 관일루가 있고 누각 밑으로 진입하면 약사전 건물이 정면으로 보이는 가람 배치로 등명사지 오층석탑이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1탑 1금당 구조의 전형적인 가람 배치를 하고 있다.

 

대웅전 영역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이 있고 좌측에는 2019년에 완성된 영산전이 있다. 극락보전은 1990년에 창건하셨다고 한다. 세 법당 모두 근대 한옥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팔작지붕 다포식 건물로 웅장하면서도 품위가 있어 보인다. 지금의 대웅전은 영산전이 완성되기 전까지 영산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영산전에 모셔져 있는 청자로 만들어진 오백나한상이 이곳에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유명하신 도예가께서 불사하신 나한상이라고 한다. 극락보전, 대웅전, 영산전 당우는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남겨줄 수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보인다. 극락보전 앞의 있는 200년 된 살구나무도 멋지다. 이제는 나무도 늙어서 살구가 예전처럼 많이 열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살구꽃이 필 때 쯤에 방문하면 멋질 것 같다.

 

월정사 홈페이지 말사 안내의 낙가사 소개글에 따르면, 강릉시청에서 동남쪽으로 12km 떨어진 괘방산 중턱에 있는 등명낙가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처음 세워서 수다사라고 했다. 고려에는 등명사가 중창되어서 많은 스님들이 수도 정진한 사찰이다. 신라 말기의 병화(兵火)로 소실된 뒤 고려 초기에 중창하여 등명사(燈明寺)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강릉부 동쪽 30리에 이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등명사라 한 것은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볼 때 이 절이 강릉도호부 내에서는 암실(暗室)의 등화(燈火)와 같은 위치에 있고, 이곳에서 공부하는 수학도(修學徒)가 3경(三更)에 등산하여 불을 밝히고 기도하면 급제가 빠르다고 한 데서 연유한다는 전설이 전한다.

 

현재 절 근처에는 고려성지(高麗城址)가 있다. 이 성은 고려시대에 등명사의 중요한 물품들을 보관하기 위해서 창고를 짓고 성을 쌓았다는 사방 1㎞의 석성이다. 이로 보아 당시의 사찰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등명사는 폐허가 되었다. 조선 초기에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한양에서 정동에 위치한 등명사를 유생들의 상소에 의하여서 폐사되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정동에 등명의 불을 끄면 불교가 망한다는 생각으로 전설에는 임금의 눈에 안질이 생겨서 점술가에게 물어보니 정동에 있는 큰 절에서 쌀 씻은 뜨물이 동해로 흘러 용왕이 노하여서 안질을 앓게 되었다고 하자 왕명으로 사찰을 폐사시켰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지만 어디까지나 등명사를 없애기 위한 묘략이며 억측이다.

 

1957년에 낙가사란 이름으로 암자를 짓고 1980년에 중창 불사를 시작하여 등명락가사라 부르게 되었다. 등명사 오층석탑이 연화무늬로 장식된 기단 위에 세워져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또한 수중사리 탑이 바다에 모셔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신비한 약수가 나와서 온갖 병에 효험이 대단하다고 한다.(출처 : 월정사 홈페이지 말사안내-낙가사)

 

끝으로 덧붙이면, 일주문 옆에 있는 약수물의 성분검사 결과를 보면 알루미늄(Al) 성분이 유난히 많이 들어 있고 철분이 많은 물이다. 중금속으로 분류되는 알루미늄이 많은 물이라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