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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경주 감은사지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2. 12. 22. 20:24

2022년 12월 4일(일)에 대전 한겨레산악회를 따라 해파랑길 3구간(경주 구간) 11코스를 걸으면서 경주시 문무대왕면 용당리 55-1에 있는 경주 감은사지(慶州 感恩寺址)에 다녀왔다. 경주에서 꼭 와보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인 감은사지를 이번에야 와 보게 되었다.

 

감은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30대 문무왕(재위 661∼681년)이 삼국을 통일한 후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이곳에 세운 절이다. 절이 다 지어지기 전에 왕이 죽자, 그 뜻을 이어받아 아들인 31대 신문왕이 682년에 완성하였다. 『삼국사기』에 문무왕이 “내가 죽은 뒤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 지내라.”라고 유언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아들인 신문왕이 바다의 큰 바위 위에 장사를 지내고,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을 세우고 감은사(感恩寺)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 감은사지에는 유명한 감은사지 3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 건물터만 남아있다. 금당 앞에 좌우로 두기의 3층석탑이 세워져 있는 가람 배치는 불국사 가람 배치와 동일하다. 금당이 없는 상태에서 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게 커다란 3층 석탑이 세워져 있는 셈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동탑이 서탑에 비해 부재들이 조금 크다. 일반인들이 육안으로 봐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어떤 의도로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하다. 한국 석탑의 대표작이라고 하나 두 탑 모두 조금 풍만한 감이 든다. 금당 양쪽에 세워진 탑이라 금당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었을지 궁금하다. 세련되고 정제된 조형미를 보이는 백제의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비해 웅장하고 풍만하게 느껴진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 장인들의 풍요로움을 대변하는지도 모르겠다.

 

문화재청의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에 따르면, 발굴조사를 통하여 강당·금당·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고, 금당 앞에는 동·서쪽에 두 탑을 대칭적으로 세웠음을 밝혔다. 이 건물들은 모두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데, 이러한 배치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금당의 지하에는 배수시설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죽은 문무왕이 바다용이 되어 이 시설을 통해 왕래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남아 있는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 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 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이 탑의 가장 큰 특징은, 각 부분들이 하나의 통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개의 부분석재로 조립되었다는 것이다. 탑을 세운 시기는 신문왕 2년(682)으로, 1960년 탑을 해체 수리할 때 서쪽탑 3층 몸돌에서 금동 사리기(보물)와 금동 사리외함(보물)이 발견되었다. 경주에 있는 삼층석탑으로는 가장 거대하며, 동해를 바라보는 높은 대지에 굳건히 발을 붙이고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모습은 실로 한국 석탑을 대표할 만하다.(출처 : 문화재청의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