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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기쁨/책속의 한줄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읽다.

아진돌 2022. 12. 24. 12:41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 이중원 옮김(2019),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서울: 쌤앤파커스, 초판1쇄 2019.6.10. 14쇄 발행 2019.7.29.

 

제목을 보고 호기심을 갖고 읽게 된 책이다. 저자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는 이탈리아 태생의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로 양자이론과 중력이론을 결합한 ‘루프양자중력’이라는 개념으로 블랙홀을 새롭게 규명한 우주론의 대가로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 평가받는다고 한다. 1986년 파도바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프랑스에 엑스마르세유 대학교 이론물리학센터 교수이자 프랑스 대학연구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L’ordine del tempo』의 번역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를 ‘시간이 없는 우주’로 이끈다. 우주라는 공간에서는 시간이라는 변수가 없고,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없고, 때때로 시공간도 사라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는 시간은 사실 연속된 ‘선’이 아니라 흩어진 ‘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빛도 물질도 중력도 모두 양자라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시간마저도 양자라는 말에 이 책을 읽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양자역학이라는 어려운 토픽을 어쩌면 가장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예전에 우주여행을 하고 지구로 돌아온 여행자가 주변 사람들이 모두 늙은이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이 밝힌 내용인 시간이 속도 때문에 늦춰진다는 것을 이야기한 내용이다. 이 책에서는 이동 속력에 따른 시간의 지연 외에도 평지에서는 시간이 더 많이 지연되고 지구의 중심에서 좀 더 멀리 떨어져 있는 산에서는 덜 지연된다고 말하며 중력과 시간의 관계를 언급한다. 평지에 사는 친구가 덜 늙는다. 아주 미세한 차이지만.

 

이 책은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현대물리학이 시간에 대해 이해한 것을 요약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뉴턴, 라이프니츠, 아인슈타인의 시간에 관한 주장들을 설명하면서 과학사적인 일화들도 소개하고 있다.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굳은 신념을 보여 주려고 자신의 이름에서 “t”를 삭제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저자가 연구하는 분야는 시간의 양자적 특성을 연구하는 양자중력 즉 루프이론이다. 루프이론은 또 다른 우주론인 끈이론과 함께 학문적인 양대 산맥이다. 입자성은 양자역학의 가장 특징적인 성질이다. 저자는 시간도 특정한 값만 취하고 다른 값은 없다고 시간의 입자성을 설명하고 있다. 시간의 최소 단위는 플랑크 시간인 10의 마이너스 44승(10-44)이라고 설명한다. 시간의 최소 간격이 존재하는데 이 간격 이하로 내려가면, 가장 기본적인 의미에서 보더라도 시간으로서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2부에서는 시간이 없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라고 말하며 사물이 아닌 사건으로 이루어진 세상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모든 과학적 진보는 세상을 읽는 최고의 문법이 영속성이 아닌 병화의 문법이라는 점을 알려 준다. 존재의 문법이 아닌 되어감의 문법이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설파하신 무상(無常)을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의 사건들은 변화하고 우연히 벌어진다고 말하며, 이 우연한 발생은 무질서하게 확산되고 흩어진다고 말한다.

 

사물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연구하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은 바로 우주를 음양오행의 법칙으로 이해하려는 동양의 선인들의 기본적인 개념과 너무나 동일하다. 저자는 “우리가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연구하면서 심리학을 이해한다고 말하며,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로 세상을 이해한다. 사물 자체도 잠깐 동안 변함이 없는 사건일 뿐이고 이후에는 먼지로 돌아간다. 시간이 그저 사건을 뜻하는 것뿐이라면, 모든 사물은 시간이다. 시간 속에 있는 것만 존재한다.”라는 설명이 크게 와닿았다.

 

3부에서는 시간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파악해 보자고 말하며 에너지와 시간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것은 에너지원이 아니라 낮은 엔트로피의 근원들이다. 낮은 엔트로피가 없으면 에너지는 균일한 열로 약해지고, 세상은 열평형 상태에서 잠들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구분도 사라지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주의 거대한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우주 엔트로피의 성장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이 간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죽는데도 살아있는 자들은 자신들이 불멸의 존재인 것처럼 산다”라고, 저자가 소개한 인도 현자의 말도 마음에 새겨야 할 금언이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인간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진화의 오류라고 말하며 “(포식자가 올 때 본능적인) 두려움 덕분에 미래를 예상하는 능력이 지나친, 전두엽이 비대한 털 없는 유인원이 탄생했다. 미래를 예상하는 능력은 분명 도움이 되는 특권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우리 유인원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이것이 시간이다.”라는 말로 책의 마지막을 마무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