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강릉 굴산사지를 둘러보다.

아진돌 2024. 2. 8. 21:18

2024년 2월 4일(일)에 대전 한겨레산악회를 따라 해파랑길 8구간(강릉 구간) 37코스를 걸으며, 37코스에 포함되어 있는 강릉 굴산사지를 다녀왔다. 굴산사지는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 597번지 일원에 있다. 강릉시로 편입되기 전에는 강원도 명주군 구정면 학산리였다.
 
굴산사(崛山寺)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하대의 9산선문(九山禪門) 중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중심 사찰이다. 굴산사는 신라 문성왕 13년(851년)에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창건한 사찰이다. 일부 학자들은 851년 이전에 이미 설립된 절이라는 설도 주장하고 있다.
 
굴산사의 역사 및 폐사 연대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고 있다. 1936년 홍수로 6개의 주춧돌이 노출되었고, 이때 정주교(鄭胄敎)가 ‘闍掘山寺(사굴산사)’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를 발견함으로써 이 절이 굴산사였음이 밝혀졌다. 굴산사라는 명칭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화경 등 많은 경전을 설하신 인도의 왕사성(王舍城) 기사굴산(耆闍崛山)의 굴산에서 따온 명칭인 듯하다. 굴산사는 고려시대에 지방 호족들의 지원 하에 번성한 후 조선 초 이후의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 초 이후에는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가 넓은 들판에 우뚝 서 있다.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당간지주를 보면 이 근처가 절터인 듯 하나, 지금은 대부분의 지역이 사유지로 되어 있다. 문화재청의 국가문화유산포털에서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굴산사지 일대는 현재 주변이 농경지로 변하여 사역의 정확한 범위를 알 수 없었으나, 2002년 태풍 ‘루사’로 인한 수해로 긴급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로, 사역의 크기는 동-서 140m, 남-북 250m의 크기로 확인되었다. 또한 토층은 3개 층의 문화층이 확인되었는데, 1·2 문화층은 유실되었으나 3 문화층은 아직 남아 있는 부분이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법당지·승방지·회랑지·탑지 등도 확인되어 역사상·학술상 귀중한 유적이다.
 
당간지주가 있는 농경지 근처에는 석불좌상이 있다. 이 당간지주를 중심으로 서·남·북 각 500m 지점에 석불 3위가 있었다. 서쪽과 북쪽의 석불은 1968년에 굴산사라는 불당을 짓고 함께 봉안하였으며, 높이 1.5m의 동남쪽 비로자나불좌상은 얼굴이 파손된 채 머리에는 큰 관모를 쓰고 있다. 바로 농경지 근처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굴산교를 지나 오독떼기전수회관 쪽으로 건너면 굴산사지라는 표지판도 세워져 있고, 울타리도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범일국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으로 추정되는 승탑이 있다. 모든 부재가 8각을 기본으로 하여 조성되어 있고, 2단으로 된 8각의 괴임돌이 있는 아래 받침돌은 평면이 원형이며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위 중간 받침돌에는 8개의 기둥을 세워 모서리를 정하고 각 면에 천상(天上)의 사람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조각되어 있는 상은 8구 모두 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데, 악기는 장구(장고)·훈(塤)·동발·비파(琵琶)·소(簫:피리)·생황(笙簧)·공후(하프)·적(笛:대금) 순으로 묘사되어 있다.
 
승탑 옆에는 범일국사의 탄생에 얽힌 설화가 있는 학바위와 석천(石泉)이 있다. 『祖堂集』에서는 범일국사의 어머니가 범일을 임신할 때 봉일지상(捧日之祥, 해를 두 손으로 떠받드는 상서로움)의 징조를 꿈꾸었고 정상적인 분만이 아니고 13개월만에 출생했다고 전한다. 다른 한편 『臨瀛誌(임영지)』에서는 한 양가의 처녀가 굴산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석천에 물을 길러 갔다가 유난히 비치는 햇빛에 무심히 그 물을 떠먹었더니 잉태하여 14개월만에 옥동자를 낳았다. 이에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학바위(鶴巖) 밑에 버렸더니 학이 날개로 아이를 싸주며 입에 단보(丹寶)를 넣어 주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그로 인하여 범상한 아이가 아닌줄 알고 집에 데려다 양육한 것이 곧 범일국사라고 소개하고 있다고 한다. 처녀가 임신하여 낳은 독생자인 셈이며, 이곳은 바로 범일국사의 탄생지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당간지주 주변 농경지에 대한 지하물리탐사 등을 실시한 바 있고, 2012년에도 서쪽 지역을 발굴조사하여 승려들이 생활하던 승방지를 확인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와 아직도 사유지에 둘러싸여 있는 굴산사지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참고문헌:
(1) 방동인(1984), "굴산사에 대한 연구와 전망," 고문화 24, 한국대학박물관협회, 1984.
(2) 도의철(2013), 강릉 굴산사지(사적 제448호) 발굴조사, 국립문화재연구소
(3)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 굴산사지 등.          
 

승탑
석천
오독떼기전수회관
현재의 굴산사 창건주 부도탑
현대 굴산사 대웅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