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행복찾아 가본곳

주문진 등대 해양문화공간을 둘러보다.

아진돌 2024. 4. 15. 10:55

2024년 4월 7일에 대전한겨레산악회을 따라 해파랑길 40코스를 걸으며,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옛등대길 24-7(주문진읍 주문리 187-2)에 있는 주문진등대 해양문화공간을 둘러보았다. 주문진 등대는 백두대간으로부터 뻗어져 나온 산줄기가 바다와 만나는 해발 30m 높이의 언덕에 세워져 있다. 주문진항이 끝나는 삼거리에서 왼쪽 석축 위로 조성된 지그재그식 길인 등대길을 따라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주문진항을 드나드는 배들의 길라잡이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등대는 언제나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아마 등대지기라는 노래가 우리에게 각인시켜준 것이리라. 등대가 있는 공원에는 인어상과 갈매기상이 설치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 조망과 주문진항 쪽의 조망이 멋지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많은 등대를 보았지만 소박하고 기능에 충실한 등대인 듯하다. 공원 입구에는 적목련과 삼지닥나무가 꽃을 피워서 올라오는 관광객들을 맞이 한다. 활짝핀 삼지닥나무 꽃이 피우는 향기가 너무 좋다.

 

주문진항은 항내 수 면적이 21만㎡ 크기인 연안항으로 예전엔 오징어, 명태, 꽁치, 무연탄, 경유 등이 주로 반입되고, 규사가 주로 반출되는 등 동해안 유수의 어업 전진기지로 호황을 누렸었다. 이곳에 여객, 화물선이 처음 입항한 것은 1917년으로 부산꽈 원산 간을 운항하는 기선의 중간 기항지가 되면서부터이다. 1960년대 주문진항 사진을 보면 수많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커다란 기름 탱크가 보인다. 지나는 배들에게 연료를 공급하던 기름 탱크라고 한다.

 

인터넷 자료와 안내판에 게시된 안내글을 참조하면, 강원도 중부지역은 특별히 발달된 항구가 없어 다른 지역에 비해 등대가 늦게 설치된 편인데. 주문진 등대는 1918년 3월 20일(조선총독부고시 61호)에 강원도에서는 첫번째로 세워졌다. 벽돌 구조의 등탑은 최대 직경 3m, 높이 13m로서 외벽엔 백색의 석회 몰타르가 칠해져 있다. 벽돌은 점토를 이용하여 제작하였으며, 이러한 벽돌식 구조의 등대는 우리나라 등대 건축의 초기에 해당하는 것으로써 건축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주문진 등대는 점등 당시에는 석유등으로써 홍색과 백색 불빛을 교대로 비추었으며, 6·25 한국전쟁으로 파손되었던 것을 1951년에 스웨덴제의 아가식 등명기로 복구하였고, 1969년 12월에 미국제 등명기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강릉시 관광안내 홈페이지에서 관광 가이드로 제시한 안내문이 특이하다. “등대의 모습에 있어서 너무나 큰 기대를 했었다면 그것은 오산의 결점을 낳는다. '그냥 지나치는 길에'라는 생각으로 들러 본다면 '안 보는 것보다 낫다'라는 여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언뜻 보면 관광 가이드의 소개글이 겸손보다는 약간 부정적인 정서를 전하는 듯하다. 내가 보기에는 유서 깊은 등대도 구경하고 주문진항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데 왜 이런 표현을 가이드로 제시할까 조금은 의아하다. 나는 꼭 올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