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0일(일)에 대전 한밭문화원의 5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세 번째 답사지로 충남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로 65-13(운산면 용현리 2-10번지)에 있는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을 참배하였다. 예전에는 마애여래삼존불로 불리던 국보의 명칭이 마애여래삼존상으로 변경되어 있었다. 삼존불은 6~7세기 동북 아시아에서 유행한 보편적 형식이지만,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입상 보살과 반가보살이 함께 새겨진 것은 중국이나 일본, 고구려, 신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라고 한다.
마애여래삼존상을 바라볼 때, 중앙에 2.8미터 높이의 거대한 불상인 석가여래 입상이 조각되어 있고, 왼쪽에 제화갈라보살 입상, 오른쪽에 미륵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는 백제 후기의 마애불이다. 제화갈라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께 추후 성불하여 부처가 될 것으로 수기하셨던 과거 연등불이시고, 반가사유상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미래에 부처가 될 것으로 수기하신 미륵보살이시다. 왼쪽부터 과거 연등불, 현세의 석가모니불, 미래의 미륵불을 새겨 놓은 삼존불이다. 삼존불은 동짓날 아침 해 뜨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백제의 미소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아침 해가 뜰 무렵에 참배하기를 권한다.

1959년에 학계에 알려진 후 1962년 12월 20일에 국보로 지정된 후 당시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도 사진과 함께 ‘백제의 미소’로 소개되었던 마애여래삼존상이다. 당시 보원사지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던 국립부여박물관 홍사준(洪思俊, 1905~1980) 관장은 1959년 어느 날, 한 나이 많은 어르신으로부터 ‘저 인바위(도장을 감추어 둔 바위라는 뜻)에 산신령이 있는데 본 부인과 작은 마누라까지 데리고 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알려준 곳을 찾아 용현계곡에 들어섰을 때, 환하게 웃고 있는 부처님 세 분이 바위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 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을 쓰고 있는 제화갈라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다. 천의를 걸치지 않은 상체는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부여 부소산성에 있는 궁녀사 사당에 모셔져 있는 궁녀들의 모습과 얼굴 모습이 유사하다.) 오른쪽의 미륵반가상은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존불의 묵직하면서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도는 윤곽선,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쾌활한 인상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인용문헌: 국가유산포털 – 서산마애여래삼존상).

이곳의 부처님은 ‘바람난 부처님’으로 불리기도 한다. 부처님 왼쪽에 어린 아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애교를 떨고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은 애첩으로 보고, 오른쪽에 가까이 있는 제화갈라보살은 약간 무뚝뚝한 미소를 띠고 있는 본부인으로 보면서 던지는 이야기이다. 문화관광해설사께서는 차마 바람난 부처님이라는 약간은 오해를 받을 수 있는 표현 대신에 예전의 홍사준 관장에게 이야기해 주신 동네 어르신의 이야기라면서 다른 버전을 들려 주셨다.
“저 골짜기 바위에 산신령이 새겨져 있는데, 산신령 왼쪽의 작은 마누라는 다리를 꼬고 앉아 손가락으로 볼을 찌르며 ‘용용 죽겠지‘라고 놀리니까, 오른쪽의 본 마누라가 짱돌을 들고 집어던지려 하고 있슈. 가운데 산신령이 오른손을 들어 본 마누라를 말리고 왼손으로는 작은 마누라를 말리는 모습이다.”라고 설명해 주셨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자리한 이곳 충남 서산시 운산면은 중국의 불교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백제의 수도 부여로 가던 길목이었다. 6세기 당시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하던 곳으로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산 5의 백화산 자락에 있는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泰安 東門里 磨崖三尊佛立像), 이곳의 서산 마애여래삼존상, 충남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산62-3번지에 있는 백제시대 유일의 사면불인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禮山 花田里 石造四面佛像) 등이 모두 태안군 근흥면 안흥항에서 부여 사비성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세워져 있다.
중국과 교류하던 길목이라는 측면에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된 식당 근처에 강댕이 미륵입상이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서산시 운산면 용현 2리(아랫강댕이)에 있는 이 강댕이 미륵불은 현재의 고풍저수지 상단부 안에 있었던 것을 저수지를 축조하면서 수몰되게 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조성 연대는 고려 말~조선 초로 추정되는데 높이는 216m, 어깨의 폭은 65cm, 두께는 25cm이고 머리에 보관을 쓰고 있으며, 오른팔을 위로 올려 가슴에 붙이고 왼팔은 구부려 배 위에 대어 서산 지방의 다른 미륵과 같은 형식이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로 통행하는 중국 사신 등이 오가는 통로에 세워졌다고도 하고 또는 보원사를 수호하는 비보장승이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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