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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서산 보원사지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6. 5. 14. 18:04

2026년 5월 10일(일)에 대전 한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5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네번째 답사지로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05에 있는 보원사지에 다녀왔다. 서산 보원사지에 있었던 사찰에 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보원사지에 관한 정확한 내력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1959년 12월에 학계에 알려진 서산 마애여래삼존상과 관련된 사찰로 추정되다가, 보원사지에서 현재 국립 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제 금동불입상이 발견되면서 백제 때부터 있었던 절터로 추정하고 있다. 신라시대 최치원(崔致遠)이 쓴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따르면, 화엄사,  해인사 등과 더불어 신라 10산 10사찰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보원사지의 면적은 102,886제곱미터이다. 현재 일대의 절터는 모두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기와조각 등이 넓게 산재해 있어 많은 사찰 전각들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는 예전에 국보에서 보물로 격하되었다가  2025년 12월에 다시 국보로 지정된 오층석탑이 있고, 보물로 지정되어있는 석조(石槽), 당간지주(幢竿支柱) ,  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 ,  법인국사보승탑비(法印國師寶乘塔碑) 등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이러한 유물들은 보원사가 통일신라시대의 사찰로 추정하게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후 이곳에서 백제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입상(金銅佛立像)이 출토되었고, 부근에 백제 때의 마애불로 유명한 국보 서산마애삼존불상(瑞山磨崖三尊佛像)이 있어, 삼국통일 전 백제시대부터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시대의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도 이곳에서 출토된 것이다.


문화관광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현재 남아있는 국가유산들을 둘러보았다. 당간(幢竿)을 세웠던 석조 기둥인 당간지주는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의 위치에 놓여있다. 마주 보고 있는 두 지주의 안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바깥쪽에는 양측 가장자리를 따라 돌대(突帶)가 돋을 새김되어 있다. 기단부(基壇部)가 없어진 것을 화강암으로 새로 보강하였는데, 주위에 흩어져 있는 여러 가지 석재들로 보아 원래는 직사각형의 기단부(基壇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간지주를 지나 개울을 건너서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면, 1탑1금당식의 가람배치를 볼 수 있다. 금당지 앞에 있는  오층석탑은 국보이다. 금당지 뒤쪽에 있는 법인국사탑 비문에 탄문(坦文, 900~974)이 고려 광종(925~975)을 위하여 조성했다는 기록을 통해 10세기 중반에 건립된 것을 알 수 있어서 우리나라 석탑 양식 기준이 되는 고려시대 석탑이다. 이 탑은 상하 2층의 기단 위에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정상에 머리 장식이 있는 구조이다. 현재 머리 장식은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있고, 그 위에 머리 장식을 고정하기 위한 철제 찰주(탑의 중심기둥)가 꽂혀 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와 통일신라 양식을 계승한 석탑이다. 기단의 이중 구조, 상하층 기단 옆면에 돋을 새김한 사자와 팔부중(불법을 지키는 여덟 신)의 조각 수법 등은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석탑의 모습이지만, 배치나 구성에 있어 새로운 양식으로 고려시대 석조각의 우수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지붕돌이 얇고 넓어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네 모서리 끝이 살짝 들린 것은 옛 백제 지역에 남아있는 백제탑의 특색이다. 기단과 1층 몸돌 사이에 몸돌받침돌이 놓여 있는 구조가 특이하다고 한다. 1968년과 2003년에 해체 보수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1968년 해체할 때 사리구(사리 용기)와 함께 납석제 소탑(작은 모형 탑) 등이 나와 국립공주박물관에 보관 · 전시 중이다.

금당지 뒷 쪽에 있는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은 탄문(坦文, 900~975)의 승탑이다. 탄문은 고려 초의 대표적인 화엄종 승려로서 광종 때 승려 최고 직위인 왕사와 국사를 지냈으며, 말년인 975년(광종 26)에 보원사로 내려와 머물다가 3개월 만에 입적하였다.


고려 왕실은 탄문에게 ‘법인’이라는 시호(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를, 그의 승탑에 ‘보승(寶乘)’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국가의 최고 장인을 보내 승탑과 탑비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승탑은 탄문이 입적한 975년에서 탑비의 비문이 완성된 978년 사이에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승탑은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으로 사리탑, 부도, 묘탑이라고도 하며, 사리를 넣어두는 몸돌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기단을 쌓아 받치고, 위에는 머리 장식을 얹는다.

보원사지 법인국사탑은 통일신라 승탑 양식에 따라 머리 장식을 제외한 모든 석재가 팔각형으로 제작된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승탑이다. 이 승탑은 몸돌의 사천왕상과 보관을 쓴 인물상, 지붕돌의 귀꽃(지붕돌 모서리에 새긴 꽃모양의 장식) 등의 조각이 매우 뛰어나다. 승탑 옆에는 탑비가 있다.


승탑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보원사지에서 출토된 석조물들을 모아놓은 곳을 둘러보았다. 그랭이법으로 만들어진 주초들의 종류를 보면 많은 전각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끝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석조(石槽)를 둘러 보았다. 화강석의 돌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절에서 물을 담아 쓰던 용기이다. 안쪽과 위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은 거칠게 다듬은 것으로 보아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아 간결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거대한 크기로 인해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내부에도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밑바닥은 평평하고 한쪽에 물을 내보내는 구멍이 있을 뿐이다. 현재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석조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978년(고려 경종 3년)에 제작된 보원사 법인국사탑(普願寺 法印國師塔)을 비롯한 다른 석조물들과 관련시켜 볼 때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간지주
▲ 국보로 재지정된 오층석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