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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서산 해미읍성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6. 5. 14. 18:06

2026년 5월 10일(일) 대전 한밭문화원 5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다섯 번째 답사지로 충남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143(해미면 읍내리 16번지)에 있는 서산 해미읍성(瑞山 海美邑城)에 다녀왔다. 바다가 아름답다는 의미의 '해미(海美)'라는 지명은 조선시대부터 사용되었다고 한다. 1416년(태종 16년) 조선 태종이 서산 도비산에서 군사훈련을 겸한 수렵대회인 강무(講武)를 하다가 해미에서 하루를 머물면서 주변 지역을 둘러보게 됐는데, 당시 해안지방에 출몰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에 적당한 장소라고 판단하여 덕산에 있던 충청병영을 이설하기 위한 대상지로 정해 1417년(태종 17년)부터 1421년(세종 3년)까지 축성을 완료하게 된다.
 
해미읍성은 풍납토성, 몽촌토성, 낙안읍성, 고창읍성 등과 같이 평지에 쌓은 성으로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들이 있고, 태안 지방에 많이 살고 계시는 가씨 성을 가지신 분들이 성씨를 하사받은 곳이기도 하다. 예전에 대전-당진고속도로가 게설되기 전에 대전에서 서해안으로 이동할 때 머물던 곳이라 맛집들도 많았다. 해미읍성은 왜구를 막는 군사시설로서 역할을 했던 곳으로 지금은 해미에 우리의 영공을 지키는 공군 비행장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에 읍성 철거령에 따라 시설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성안으로 민가가 들어서면서 옛 모습이 거의 사라졌다. 그러다가 1973년부터 정비에 들어갔고, 1997년부터는 발굴이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남쪽 문인 진남문(鎭南門)이 있고, 최근에 복원된 동문인 잠양루(岑陽樓), 서문인 지성루가 있다. 북문은 비상문인 암문으로 축조되어 있다. 진남문으로 들어가 뒤돌아보면 문루 아래를 가로지른 받침돌 중앙에 '황명홍치사년신해조(皇明弘治四年辛亥造)'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황명홍치(皇明弘治)는 명나라 효종의 연호인 홍치를 의미하는데 1491년(성종 22년) 辛亥年에 진남문이 중수(重修)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진남문에서 동헌까지는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로는 호서좌영(湖西左營)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2층 누각과 동헌이 있고, 동헌 서쪽에는 지방관과 가족이 머물던 내아 건물과 출장 나오는 관리나 사신 등이 묵었던 객사가 복원되어 있다.
 


진남문에서 동헌으로 걸어가다 보면, 우측에는 조선 시대 주요 병기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천주교 병인박해 때 교인들을 매달아 고문했다고 알려진 300년 이상 된 회화나무가 있다. 회화나무 바로 옆에는 감옥을 재현한 옥사가 있다. 1790년부터 100여년 동안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투옥했던 역사적 현장이다. 동헌 동북쪽 언덕 위에는 청허정(淸虛亭)이 있다. 동문인 잠양루 뒤쪽에는 해자(垓字)가 복원되어 있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만든 것으로 과거에는 읍성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현재 읍성 북쪽에 석축 해자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참고로 국가유산포털에서 해미읍성을 소개하고 있는 설명자료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해미읍성은 조선 시대 충청도의 전군(全軍)을 지휘하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성(忠淸兵馬節制使營城)이다. 이 성은 고려 말부터 침입이 잦았던 왜구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위하여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節制使營)을 해미로 옮기면서 1417년(태종 17년)부터 쌓기 시작해 1421년(세종 3)에 완공되었다.
 
주 출입구인 진남문(鎭南門)은 잘 다듬어진 돌로 만든 반원형의 홍예문(虹霓門)이다. 성 밖은 해자(垓字)로 둘렀는데 발굴조사를 통해 북쪽 해자의 일부를 복원했다. 기록에는 성벽 위에 여장(女墻, 몸을 숨기기 위해 성 위에 낮게 쌓은 담)이 있었다고 되어 있으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성곽 둘레는 1500m이며 높이는 5m로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 주변에 탱자나무를 심었다. 흔히 '탱자 성'이라는 뜻으로 '지성(枳城)'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1652년(효종 3)까지 230여 년간 병마절도사영의 기능을 하였지만,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옮겨간 후 해미 현감이 겸영장(兼營將, 지방 수령이 각 지방의 군사를 통솔하는 일을 겸하여 맡아보던 무관 벼슬)이 되면서 해미읍성이 되었다. 충청도 5군영 중 하나인 호서좌영(湖西左營)으로 1895년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까지 243년간 내포 지방 12개 군현의 군권을 지휘하였다.
 
현감이 겸했던 영장(營將)은 도적이나 반란 세력을 토벌하는 토포사(討捕使)의 임무도 맡았으므로, 이곳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시기에 내포 지역의 신자들이 끌려와 죽임을 당하는 순교의 현장이기도 하다. 해미읍성에는 병마절도사와 겸영장이 집무하던 동헌(東軒)을 비롯해 관아(官衙)와 객사(客舍) 등이 꽉 들어차 있어 장관이었다고 한다. 1579년(선조 12)에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한 적도 있고,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해미에서 유배 생활하며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인용문헌: 국가유산포털 – 해미읍성).
 

▲ 주 진입로인 남문 - 진남문
▲복원된 동쪽 성벽
▲동남쪽 성벽
▲진남문 안쪽
▲황명홍치사년신해조(皇明弘治四年辛亥造) - 1491년(성종 22년) 辛亥年 만듬
▲다연장포의 시조 - 신기전
▲회화나무 - 다른 나무보다 잎이 훨씬 늦게 나온다.
▲옥사
▲주리를 틀던 의자
▲ 동헌의 정문
▲동헌
▲동헌 뒷편의 부속 건물
▲내아
▲객사
▲정자로 올라가는 계단
▲할머니가 된 할미꽃 - 막 태어나도 할미꽃, 늙어도 할미꽃
▲동문인 잠양루
▲진남문에서 동헌으로 가는 길 옆에 전시된 무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