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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 청마기념관을 둘러보다.

아진돌 2026. 5. 25. 16:37

2026년 5월 24일(일)에 남파랑길 거제 구간 26코스를 완주한 후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2길 6(둔덕면 방하리 505-1)에 있는 청마기념관을 둘러 보았다. 이곳 출신이신 청마 유치환(靑馬 柳致環, 1908~1967) 선생의 생가를 2000년 5월에 복원 준공하였고, 청마기념관은 2001년 1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기념관 전시 및 조경공사를 완료하고. 2008년 1월에 임시 개관하였다가 2008년 4월 18일에 준공식과 시비를 제막하였다고 한다.
 


청마기념관 왼쪽에 설치되어 있는 시비와 선생의 입상을 보고, 바로 옆의 생가를 둘러보았다. 안채와 별채로 구성된 단출한 초가집이고 마당 한쪽에 우물이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청마 흉상이 있고, 생가 모형이 전시되어 있다. 중앙에는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고 왼쪽에는 청마 유치환의 시세계라는 주제로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지인들과 주고받았던 편지가 있다. 2층 전시실에는 청마 유치환 시인의 생애와 삶이라는 주제로 청마 연보와 함께 거제에서 태어난 이야기, 학창시절 이야기, 시집들이 전시되어 있다.
 


청마기념관 홈페이지와 시비에 소개된 자료에 따르면, 한국 근대문학사의 거목인 청마 유치환은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5번지인 이곳에서 1908년 음력 7월 14일 아버지 유준수와 어머니 박우수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청마 선생은 3살 때인 1910년에 가족이 통영으로 이사하여 11세까지 한학을 배웠으며,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 도요야마(豊山) 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학교 4학년 때 가운이 기울어져 귀국하여, 1926년 부산 동래고등보통학교 5학년에 편입하여 졸업하였고, 1927년에 연희전문학교 문과 1년을 중퇴하였다.
 


1931년 문예월간 제2호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한 후 1937년 당시 시단을 풍미했던 정지용의 시에 감동하여, 형 유치진과 함께 동인지 『생리(生理』를 발간하면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1939년에 초기의 대표작인 ‘깃발’, ‘그리움’, ‘일월’ 등이 수록된 첫 시집 『청마시초』 발간과 더불어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쳐 온 결과,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경상북도 문화상 및 예술원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그 후 1957년에는 한국시인협회장에 피선되었으며 경주여중고, 경주고, 경남여고 교장을 거쳐 1967년 부산남여상 교장 재임시 부산 좌천동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한국 문단의 거목이다.
 
선생의 작품은 허무를 극복하려는 남성적, 의지적인 시향으로 사람의 삶 어디에나 있는 뉘우침, 외로움, 두려움, 번민 등의 일체로부터 벗어난 어떤 절대적인 경지를 갈구했으며 그 해결의 길을 일체의 생명적인 것에 대한 허무주의적 자각에서 찾고자 했다. ‘깃발’을 비롯한 작품의 소재를 청정해역과 천년의 절경을 간직한 거제의 모습을 담았고, ‘거제도둔덕골’은 8대로 살아온 고향이며, 청마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출생기’ 에서는 열나흘 새벽 달빛을 밟고 유월이가 이고 온 왕고모댁의 제삿밥을 먹고 난 후 자신이 태어났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등 출생지인 이곳 거제도 둔덕골에 대한 애틋한 향수가 청마의 작품 곳곳에 나타나 있다고 한다.(출처: 청마기념관 홈페이지 – 청마 유치환 생애).
 


청마기념관 홈페이지(http://cheongma.or.kr/main/index.php )의 기념관 설립 취지에서 청마 시인을 당산나무 같은 시인으로 소개하면서, “한국시사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당산나무 같은 정신적 거목으로서 숨길 수 없는 감동을 남긴 시인으로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 분망함 속에서도 지사적 풍모를 보여준 청마를 일러 ‘사표(師表)’라 칭하여도 결코 지나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한 나라의 국민 소득이 비록 만불을 넘어섰다고 할지라도 국민 모두가 하루에 명시든, 타인의 시든, 자작시든 간에 한편의 시를 읽는 습관을 갖지 못하는 국가의 국민은 문화 국민으로 존대를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문화민족의 긍지를 지녔기에 한국인이 가장 애송하는 시를 남긴 청마가 자랑스럽습니다. 하여 청마가 태어난 이곳에다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 그 업적을 고양하기 위하여 기념관을 건립 하였습니다.”라고 전하고 있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영원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이하 생략)”이라는 명 싯귀를 남긴 ‘깃발’과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오늘도 나는/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이하 생략)”라는 구절이 있는 ‘행복’ 등이 소개되어 있다.
 
젊었을 때 외웠던 싯귀들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시집을 읽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없이 살아온 나로서 다시 문학에 관심을 갖도록 일깨워준 관람이었다. 남파랑길 26코스를 걸으며 얻은 큰 소득의 하나이다. 청마기념관 리플렛에 실려있는 몇편의 시를 사진으로 올린다.
 

▲ 청마 유치환 흉상
▲생가 모형
▲2층전시실
▲2층 야외 전망대
▲1층 전시평면도(출처: 청마박물관 홈페이지 관란안내에서 퍼옴)
▲2층 전시평면도(출처: 청마박물관 홈페이지 관람안내에서 퍼옴)
▲방하 삼거리 조형물
▲방하 삼거리에서 청마기념관 가는 길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