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일(2006). 『易과 탈현대의 論理 – 라이프니츠에서 괴델까지 역의 강물은 흐른다』. 서울 : 지식산업사. 초판1쇄 2006.10.25, 초판 3쇄 2016.3.22.
2017년 2월 5일에 김상일 교수의 『易과 탈현대의 論理』를 읽었다. 저자 김상일 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를, 미국의 필립스대학원과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6년 8월 정년에 이를 때까지 한신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 과정사상연구소에서 ‘코리아 프로젝트’ 디렉터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탈현대는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을 번역한 것으로 서양의 탈현대는 19세기말 칸토어(1829-1920)의 대각선 정리가 효시이며, 대각선 정리의 구조는 이미 소강절(1011-1077)이 64괘를 매트릭스 구조로 나열한 방도와 같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인간 지성이 풀지 못할 난젯거리로서 거짓말쟁이 역설(paradox)에 대한 서양철학의 접근과 역(易)에서의 접근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인간의 역사는 모호성에서 시작되고 이런 모호성에서 야기된 것이 바로 자기성찰 또는 자기언급적 행위다.”라고 말하고 있다.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의 기호학을 인용하여 사물에 대해 명칭을 부여하는 네이밍(naming) 행위는 자기언급(self-reference)이며 역설을 조장한다고 말한다. “아담과 이브가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을 말하는 창세기는 기원전 850년경에 쓰인 것으로, 같은 시기 동양에서는 기원전 6-8세기 무렵에 불교와 도가에서는 이름붙이기(naming)을 문제시하는 사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유가는 이름붙이기를 권장하는 사상이다. 즉, 유가는 유대-기독교 전통과 일치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창세기의 모든 열매와 사과나무, 즉 전체와 부분의 문제는 현대논리학의 부분전체론(mereology)의 문제이며 역설과 난제의 발생 원천이라고 보고 있다.
서양에서는 칸토어에 와서 수학에서 다루어지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로 수학은 역설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토정비결이 주역을 원용한 텍스트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뜻에서 역의 글쓰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토정비결을 연초에 운세를 점치는 도구로만 치부했을 뿐이지 그 원리를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괘를 태세수와 나이를 더한 수의 Modulo-8, 중괘를 생월의 Modulo-6, 하괘를 생일 일자의 Modulo-3으로 뽑아 한 해의 운세를 보는 원리와 이지함 선생의 통변 원리에 도전해 볼 필요가 있다.
11세기 신유학에 와서 무극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궁극자를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고 한 것을 유가사상이 노장사상의 유무 상생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주자가 적극적으로 수용하나 양명학에서는 이를 저지하며 수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며, ‘무극이태극’과 관련하여 주자와 육상산 형제가 아호사(鵝湖寺)에서 토론했던 아호논쟁(鵝湖論爭) 즉 주륙논쟁(朱陸論爭)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태극도설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1930년대 서양의 수학자 쿠르트 괴델(Kurt Gödel)(1906-1978)이 역설에 대해 비결정적인 문제라고 증명한 불완전성의 정리를 소개하며, 원효는 그의 《판비량론》에서 괴델 보다 먼저 이 문제를 ‘부정(不定)’이라고 정리하였다고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아호논쟁에서 “주자와 상산 형제는 논쟁하고 있는 문제의 성격 그 자체를 몰랐던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해결할 수 없는(unsolvable)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고 한다.
소쉬르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2004)의 기호학을 기반으로 한글의 우수성을 소개하고 있다. “한글은 서양의 알파벳과 같은 표음문자인 동시에 한자와 같은 상형문자이고 동시에 회의문자다.”라는 이정호 박사의 연구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덧붙여서 음양이론체계 등이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충남대학교 명예교수이신 남명진 교수께서 주역 강의를 하실 때마다 강조하는 사항이라 나로서는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이 책에서 언급한 내용을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면 아래 단락과 같다.
음양오행체계는 중국 한자문화권이 아니고 동북아 동이문화권이 그 시작점임을 여기서 강조해 둔다. 아울러 강조할 것은 갑골문의 점치기에서 역이 기원했다고 할 때 갑골문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우리 동이계라는 사실이다. 언어상으로 예를 들어 음/양을 뜻하는 말에서 음에 해당하는 그림-그림자-구름-검음-그르다와 양을 뜻하는 밝음-바르다-불구네-불구스레 등과 같이 음(音)이 하나의 계열을 만들지만 이를 한자로 옮겨 놓으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제8장에서는 “역에서는 관찰자 자신을 관찰하는 탈현대적(post modernism) 기법이 발달해 있다.”라고 소개하며 정역과 서양철학과의 관련성을 설명하고 있다. “19세기까지 동양에서는 하도와 낙서가 있었다 19세기 말 한국에서 정역도가 새롭게 작도되었다. 정역도는 수의 개념을 바꾸고 건·곤의 위치를 바꾸고 괘의 위치를 전환함으로써 하도와 낙서와는 비교가 안 될 변화를 일으켰다.”라고 말하고 있다. “서양에서는 19세기에 다윈, 프로이트, 그리고 마르크스가 문명전환의 주도적인 구실을 한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제Ⅱ부에서는 역과 수학의 3파전이라는 제목으로 수학의 3파전과 역의 3파전을 소개하고 있다. 수학에서는 역을 접하게 된 라이프니츠가 수에 기호를 도입한 것을 소개하며, “역설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연수를 기호논리로 대응시키는 방법(논리주의적 방법)과 자연수를 다시 문장으로 바꾸는 방법(형식주의적 방법)으로 나뉘었다.”고 한다. 자연수와 자연수를 대응시키는 방법(칸토어), 자연수와 기호논리를 대응시키는 방법(러셀), 자연수를 문장으로 대응시키는 방법(힐베르크)을 거쳐 괴델이 일상적인 문장을 가장 확실한 자연수로 바꾸어 일약 세기적 공헌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역학도 상수파, 의리파, 도상파의 3파로 나뉜다고 말하며 세 가지 역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한 대(漢代)의 우번(虞飜)과 그 이전의 순상(荀爽), 그 이전의 경방(京房)에 의해 등장한 상수역은 같은 괘를 놓고도 공자의 주역이 서로 상반된 서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방의 대표적인 학설인 비복설(飛復說)을 소개하고 있다. 경방은 질서를 숨겨진 질서와 나타난 질서의 대대성으로 파악하려고 했고, 괘의 생긴 모양을 보고 64괘를 비복관계로 분류한다고 한다. 상수역을 다시 추상화하는 것이 바로 의리역으로 정이에 와서 그 꽃이 만개한다. 송대에 들어와 역학자등은 더 이상 상수역과 의리역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의 역은 새로운 기틀을 찾기 시작했고 역을 도상에서 찾기 시작했는데 이를 도상역이라고 한다. “남송의 진단(陣摶)을 도상역의 비조로 볼 수 있는데 그의 도상역은 그 뒤 세 갈래의 강줄기로 나뉘어진다.‘라고 말한다. 첫째는 진단-종방-이개-허견-범악창-유목, 둘째는 진단-종방-목수-이지개-소강절, 셋째는 진단-종방-목수-주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수학에서와 같이 도상역을 발전시켜 다시 또 다른 역을 구상할 때가 된 것 같다. 동이족의 원래 《역경(易經)》은 도가사상에 기원을 준 것 같은 점을 고려하여 《천부경》과 《정역(正易)》등을 좀 더 깊이 연구하여 새로운 역을 발전시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저자는 천부경이라는 표현 대신에 우리 민족의 경전으로 표현하고 있다. 저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수학자들이 지식의 무모순과 독립성을 찾아 역설을 제거하기 위해 나섰다가 결국 괴델에 이르러 그 불완전성에 도달했듯이, 동북아의 고대인들은 점을 통해 확실성을 추구했다가 역을 만나게 딘 것이다. 고대인들이나 현대인들이 불확실성 앞에 불안해 하고 확실성을 추구하려고 하는 점에서는 같다고 보는 것이다. (중략) 64괘의 마지막 괘를 ‘화수미제괘(火水未濟卦)’ 남겨두고 끝나는 것을 일종의 역의 비완전성 정리라고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역에 대한 평가는 각양각색이라는 점을 소개하고 라이프니츠가 역으로 보고 2진법을 발명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소개하고 있는 후기 3쪽은 사진으로 붙였다. 이 책 역시 저자의 『한의학과 러셀 역설 해의』 책의 단점인 중언부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옥의티라고 할 수 있다. 서양철학과 역과 관련한 동양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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