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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남사 예담촌의 고가(古家)들

아진돌 2019. 10. 26. 17:56


2019년 10월 19일에 대전광역시 서구문화원의 제23차 서람이 역사문화탐사에 참여하여 두 번째로 들른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의 남사예담촌에서 둘러본 고가(古家)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Daum 백과의 게시되어 있는 이종호 박사의 소개 글과 안내판에 게시된 안내문을 인용하였음을 미리 밝혀 둔다.

     

처음에 안내 받은 곳은 최씨 고가이다. 경남 문화재자료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곳에 들어가면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지어진 사랑채에 닿게 되는데 기둥들이 원형 배흘림 기둥이다. 기둥의 나무 무늬가 멋지다. 건물을 지을 때 가장 무늬가 아름다운 부분이 앞쪽으로 향하도록 설치했다고 한다. 왕궁이나 절에서만 허용되는 둥근 기둥으로 지운 집이므로 일제 강점기에 지은 집임을 알 수 있다. 이종호 박사 글에 의하면 현재 세대주인 최재기 씨의 부친이 1920년에 전통 양식으로 건축한 가옥이다. 건물은 안채를 중심으로 사랑채, 익랑채가 ㅁ 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안채로 향하는 중문이 사랑채 동쪽과 서쪽에 두 곳이 있다. 현재는 안채는 개방되어 있지 않아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동쪽의 중문을 지나면 안채가 한 눈에 들어오지만, 서쪽 중문을 지나면 ㄱ 자형의 내외담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최씨 고가의 사랑채 마당에는 150년 된 매화나무가 있고, 대문에는 거북이 형태의 자물쇠가 설치되어 있다. 해설사께서는 이 곳이 가야지역이라 가야의 상징물인 거북이를 설치하고 있고, 거북이의 목을 들어 올려야 문이 열리도록 설치되었다고 한다. 눈여겨볼 만한 것 중의 하나가 화장실 구조이다. 최씨 고가의 화장실은 여느 변소와는 달리 2층으로 되어있어 계단을 올라가서 일을 볼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이것은 조선시대에 있었던 '임원경제지'라는 농업생활 백과사전에서 위생적이고도 효과적인 인분 활용을 위해 올려 만들도록 권장한 것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 한다. 2층 변기에서 일을 보고 1층에 자리한 흙이 담긴 상자에 담겨지면 그 위에 땔감의 재를 덮어 냄새를 줄이고 발효를 촉진시킨다. 또한 화장실 남쪽으로 홈을 내어 소피 본 후 자연스레 흘러나와 고이도록 둥글게 구덩이를 파 놓아 인분을 활용하여 거름을 하는 지혜를 엿볼 수있다. 같은 동네의 이씨 고가에서도 같은 구조의 2층 화장실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연일 정씨의 사랑채이자 위패를 모신 재실인 사양정사(泗陽精舍)를 둘러 보았다. 경남 문화재자료 제452호인 사양정사는 사수(泗水)의 泗와 남쪽이라는 뜻의 陽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연일 정씨는 조선 시대 사육신 사건의 주역인 정몽주의 후손이지만, 남사마을에서의 토대는 구한말 유학자인 계제 정제용(1865~1907)의 아들 정덕영과 장손 정정화가 남사마을로 이전한 후부터 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제용은 파리장서(巴里長書)를 작성한 곽종석의 문인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기둥은 배흘임 원형 기둥이다. 1920년대 지어졌다고 한다. 솟을 대문이 있고 사랑채와 안채로 향하는 중문 옆에는 120년 된 배롱나무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단풍나무 고목이 있다. 중문을 지나 처음 만나는 집이 안채라고 하고 특이하게도 사랑채가 안채 뒤에 자리잡고 있었다. 중문 쪽에는 은목서 나무가 막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었고 안채 앞뜰에는 차나무가 있었다.

  

세 번째로는 경남 문화재자료 제118호인 이씨 고가를 둘러보았다. 이종호 박사의 설명을 인용하면, “이씨 고가는 남사예담촌의 상징이 되어버린 X자형 회화나무 골목입구부터 이씨 고가이다. 나지막한 돌담 끝에 있는 대문을 지나면 그 옛날 화려했을 사랑채와 2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는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사랑채, 익랑채, 곡간채가 안채를 중심으로 ㅁ자로 배치된 가운데, 왼편으로 사당이 있다. 집안의 부유함을 말하듯 화려하고 과장된 건축기법이 사용되었으나 아담한 한옥 특유의 멋이 있는 고가이다.” 입구의 X자형으로 교차한 듯 보이는 회화나무는 부부회화 나무라는 호칭을 갖고 있었고, 해설사께서는 부부가 같이 사진을 찍도록 권하고 있었다.

  

이씨 고가의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마당에 커다란 회화나무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키가 크며 수령이 약 450년이라 삼신할머니라고 불리기도 한다. 몸통에 난 배꼽 모양 구멍과 뿌리 위로 돋아난 돌기가 음양의 상징처럼 부각되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배꼽에 손을 넣고 소원을 빈다고 한다. 사랑채 앞쪽에는 2층 화장실이 있고 그 밑에 잿간이 있다.

  

남사마을에서 일가를 이루었던 성주 이씨 가문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보물 제1294호이자 가보가 있다. 조선 개국 때 태조가 공을 세운 정무공 이제에게 내린 「이제개국공신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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