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0. 8. 2. 12:34

2020년 7월 18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번지)에 있는 봉은사에 다녀왔다. 대한불교 조계종 25개 교구의 본사들을 모두 답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 첫 번째 답사지로 직할교구본사인 서울의 조계사를 참배한 후 지하철을 이용하여 강남에 있는 봉은사로 향했다. 봉은사 근처에는 자주 왔었지만 봉은사 경내를 들어와 본 것은 처음이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조계사에서 보았던 연꽃 화분들이 줄지어 서 있고 위로는 백중재를 알리는 백색 연등들이 길게 걸려 있었다. 인도변 가까운 곳에 일주문이 새로 세워진 후 예전에 일주문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3칸의 진여문이 있다. 진여문 양옆 바깥쪽에는 네 분의 사천왕 조각들이 세워져 있었다. 원래 이곳에 있던 크기가 작은 사천왕 네 분은 대웅전 안에 모셔져 있었다. 사천왕상들은 대웅전에 잠시 머물다 다른 절로 옮겨갈 것이라고 한다. 법왕루 계단을 오르니 백색 연등이 하늘을 덮은 대웅전 뜰이 나타난다. 삼층석탑 뒤로는 석가모니부처님, 아미타부처님,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이 있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오른쪽 마당에는 선불당이 있고 바로 위에는 지장전이 있다. 대웅전과 지장전 사이 뒤로는 영산회상도와 십육나한도가 있는 영산전이 있다. 대웅전 왼쪽에는 종루와 미륵전이 있다. 미륵전 누각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거대한 미륵대불 입상이 나타난다. 미륵전을 지나 왼쪽에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인 판전(板殿) 편액이 걸려 있는 판전이 있다.

   

봉은사는 현대식 건물의 수련원까지 있는 거대한 절이다. 부자들이 사는 서울 강남에 있는 이 큰 절이 조계사 살림을 모두 책임진다고 했던 어떤 분의 말이 생각났다. 마침 저녁 예불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각 전각에서는 저녁 예불이 시작되어 우리도 대웅전에서 저녁 예불을 드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금강바라밀다경을 독송하여 주셔서 금강경을 일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대전으로 내려오는 기차표로 8시 KTX 기차표를 예매한 상태라 예불을 끝까지 참석하지는 못했다. 명상을 마치고 정근과 희사 시간까지만 있다가 나와야 해서 아쉬웠다. 저녁 공양으로 주신 떡을 먹으며 대전으로 향했다.

   

고은 선생의 문화기행집 『절을 찾아서』를 보면 봉은사는 인도의 석가시대 정사들과 유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봉은사가 넓은 이조시대의 승과평(昇科坪)에 자리잡고 있는 평지 가람이라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봉은사는 신라 원성왕 10년(794년)에 연회국사(緣會國師)가 견성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섭정을 하던 문정왕후에게 발탁되어 봉은사 주지를 맡은 보우(普雨) 스님이 중창하여 전국 수사찰의 위상을 가졌다고 한다. 문정왕후가 물러난 후 보우스님은 탄핵되어 제주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참형을 당했다고 한다. 봉은사 홈페이지(www.bongeunsa.org)에서 주지스님이신 원명(元明) 스님 말씀대로 봉은사는 억불숭유시대 불교를 중흥한 보우대사의 원력과 국난에서 나라를 구한 서산·사명대사의 정신이 깃들어있는 유서 깊은 절이다. 봉은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광복 후 봉은사는 조계종 총무원 직할사찰이 되었다. 그러나 1950년의 전란으로 당우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전란이 끝나고 부분적인 중창불사가 이루어져 지속적인 발전을 보였다. 1960년대 정화를 겪으면서 통합종단 조계종이 출범하고 봉은사도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