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강원도 속초시 신흥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0. 8. 10. 09:24

2020년 7월 31일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에 다녀왔다. 대한불교 조계종 25개 교구의 본사들을 모두 답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그 세 번째 답사지로 설악산에 있는 신흥사를 다녀왔다. 휴가철이라 주말에는 소공원까지 차를 운전하여 들어가기 어려울 것 같아 금요일에 휴가를 내어 아침 일찍 출발하였다. 호남고속도로-경부고속도로-중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서울양양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 등 고속도로만 7개를 지나서 설악산 입구에 도착하였다. 북양양IC로 빠져야 하는 걸 놓치고 속초IC까지 갔다가 국도로 소공원에 도착하였다. 소공원 입구의 무료주차장에는 주차한 차가 없었고 모든 차들이 소공원으로 들어가고 있어서 우리도 서행하는 차량 행렬에 합류하였다. 소공원으로 들어가는 차들은 사람들의 보행속도보다도 더 느리게 이동하였다. 소공원 주차장까지 들어가는데 30분 이상 걸린 듯하다. 실제로 소공원 주차장에 도착해 보니 주차요원들이 차량들을 3중 주차를 시키고 있어서 진입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었다. 주차비는 5천원이다.

      

신흥사 경내로 들어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曹溪禪風始源道場雪嶽山門(조계선풍시원도장설악산문)이라는 현판이 걸린 삼주문(한쪽 기둥이 3개라 내가 붙인 이름임)을 지나면 일주문을 만난다. 일주문 안에 조각된 용의 모습이 멋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커다란 통일대불을 만난다. 설악산 등산을 하다 보면 이 불상 앞을 지나게 된다. 이 통일대불은 1987년 8월 30일(음력 7월 7일)에 시작하여 1998년 10월 25일에 점안 대법회를 가진 석가모니불로 높이 14.6m, 좌대 높이 4.3m, 좌대 직경 13m이며, 청동 108톤으로 조성되었다. 좌대 둘레에는 통일기원 16나한상이 조각되어 있다. 통일대불 내부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신 내부법당이 있다. 요즘 통일대불 앞에 법당을 신축하기 위한 보시를 받고 있었다. 시주를 권하는 보살님은 우리 일행을 보고 부처님께서 20년 이상 비를 맞고 계신다는 말로 보시의 마음을 이끌어 내고 계셨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정면에는 보제루가 있고 좌측에는 종루가 보인다. 보제루 밑을 지나면 극락보전이 보이며 아미타불을 친견하게 된다. 넓은 절 마당에는 석등만이 놓여 있다.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하고 계시다. 701년에 의상(義湘)대사께서 신흥사 이전의 향성사를 중건하고 절 이름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고쳤을 때도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의 3존불을 조성한 유래를 갖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 청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처마 끝에는 활주가 세워져 있다. 극락보전은 조선후기의 건축물 양식으로 웅장함을 보여주는 아름다움이 있고, 단청의 다양한 문양들이 볼만하다. 보제루에는 많은 역사적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고 하나 지금은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오른쪽에는 적묵당(寂默堂)이 있다. 극락보전에서 삽배를 올리고 조용히 앉아 반야심경을 읽고, 신묘장구대다리니 21독을 포함하여 천수경을 읽었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고, 도명존자와 무득귀왕이 좌우에 서 있다. 이곳 명부전의 전면 3칸의 문 중에서 스님이 드나드는 중앙 문과 달리 재가불자들이 출입하는 좌우의 두 문은 고개를 숙이고 드나들도록 낮다. 이곳 명부전만의 특이한 점이다. 조사당은 문이 잠겨있어서 참배하지 못했다. 왜 문을 닫아두는지 의아하다. 이곳 산신당은 삼성각(三聖閣) 현판이 걸려 있다. 안에는 부처님 탱화가 가운데 모셔져 있고 좌우에 산신 탱화가 모셔져 있다. 신흥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은 신흥사로 들어오는 길옆에 있는 향성사지 삼층석탑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므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석탑이다. 고은 선생은 『절을 찾아서』에서 오층석탑이라고 기록하셨으나 오류가 아닐까 한다. 안내판에도 삼층석탑 기술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에 기술된 신흥사의 유래를 보면 다음과 같다. 701년에 의상(義湘)이 자리를 능인암터로 옮겨서 향성사를 중건하고 절 이름을 선정사(禪定寺)라고 고쳤다. 이 때 의상은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의 3존불을 조성하여 이 절에 봉안하였다. 선정사는 1000년 동안 번창하였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구층탑이 파괴되었고, 1642년(인조 20)에는 화재로 완전히 타 버렸다. 1644년에 영서(靈瑞)·연옥(蓮玉)·혜원(惠元) 등이 중창을 발원하던 중, 하루는 세 승려가 똑같이 소림암(小林庵)에서 나타난 신인(神人)이 이곳에 절을 지으면 수만 년이 가도 3재(災)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주는 꿈을 꾸고, 선정사 옛터 아래쪽 약 10리 지점에 다시 절을 짓고 이름을 신흥사라 하였다.

     

1965년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가 되어 양광·속초·강릉 등지의 사암을 관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 절의 주지를 지냈던 성원(聲源)이 대소의 당우들을 거의 모두 중건 또는 중수하였고, 범종을 새로 만들었다. 최근 절 이름을 ‘神興寺’에서 ‘新興寺’로 고쳐 부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명부전·영산전·보제루·천왕문·일주문·불이문·적묵당(寂默堂)·설선당 등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된 보제루가 있다(인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