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강원도 횡성군 월정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0. 9. 2. 07:46

2020년 8월 16일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에 다녀왔다. 대한불교 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답사계획에 따라 네 번째 답사지로 오대산 월정사, 부속 암자 두 곳, 적멸보궁을 다녀왔다. 오대산 국립공원 내에는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를 비롯하여 중대 사자암, 남대 지장암, 동대 관음암, 서대 염불암, 북대 미륵암 등 오대가 있고 문수보살 성지로 알려져 있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월정사를 창건하신 자장율사는 중국에 유학하며 산서성 오대산의 태화지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를 전해 받은 후 신라에서도 오대산을 찾아보라는 말씀을 듣고 이곳을 찾아 오대산이라 하였다. 중대 사자암 뒤편의 전국 최대 명당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조성하였다.

  

월정사는 탄허스님의 친필로 “月精大伽藍(울정대가람)”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는 일주문에서부터 천왕문까지 이어지는 전나무길이 유명하고, 6·25 한국전쟁 때 아군에 의해 공비토벌 목적으로 모든 전당을 불살라 버린 후 탄허스님 등의 노력으로 중건된 뼈아픈 역사로도 유명하다. 만월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적광전(寂光殿) 뒤로 수광전/지장전, 진영각 등 전각들이 가로로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는 점도 특이하다.

  

월정사 홈페이지(www.woljeongsa.org) 따르면, 월정사는 해방을 전후해서 종정(교정)을 4번이나 역임하신 한암스님께서 주석하시며, 승가오칙(僧伽五則)을 통한 청정한 기상을 진작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월정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의 위상을 확립하고, 동국대학교 건립을 주도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1.4후퇴 과정 중에, 아군에 의해 월정사를 비롯한 오대산의 암자들이 전소되면서, 오대산은 개산(開山) 이래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럼에도 화엄학의 대가이며, 불교경전은 물론 동양사상 전반을 아우른 탄허스님께서 주석하시며 월정사는 점차 추슬러진다. 이때 탄허스님의 제자 만화스님이 현 적광전을 중건하고, 이후 현해스님이 대법륜전을 건립한다. 그리고 현 주지인 정념스님에 의한 각고의 노력으로, 가람이 일신되면서 오대산의 성세가 재현되기에 이른다. 현재 월정사는 명상마을과 성보박물관 등을 전통사찰의 영역 밖에 새롭게 조성하면서, 2018평창 동계올림픽을 문화올림픽 으로 전개하는 메카로 작용하고 있다(출처 : 월정사 홈페이지, www.woljeongsa.org)

  

지난 2019년 5월에 대전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주최하는 서람이 역사문화탐방대에 합류하여 월정사를 방문한지 거의 일 년 만에 다시 찾았다. 대전에서 일찍 출발했는데도 11시경에 도착해 보니 소형차 주차장은 벌써 꽉 차있었다. 차를 주차하고 다리를 건너면 바로 천왕문에 도착한다. 천왕문을 지나면 2층 누각인 금강루를 지나게 되고 금강루 2층 누각에는 티베트 불교의 상징물로 옴마니반메훔을 외우면서 한번 돌리는 것으로 경전을 일독한 것으로 간주된다는 법륜(法輪)이 있다. 금강루를 지나면 국보 제48호 팔각구층석탑과 보물 제139호인 석조보살좌상이 있다. 팔각구층석탑은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 치아를 모신 석탑이다. 석조보살좌상은 수원의 봉녕사에 있는 희견 보살상의 모델이 된 보살상인듯 하다. 적광전 뒤로는 하나의 전각 안에 아미타불을 모신 수광전과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전을 겸하는 전각이 있다. 사찰 안의 가게에서 예쁜 주머니에 담은 공양미를 사서 적광전 부처님께 올리고 법당에 앉아 천수경을 읽고 시묘장구대다라니경 21독을 하였다.

  

국립공원 입구에서 입장료와 주차비를 징수하고 있다. 입장료는 일인당 5,000원이고, 주차비도 5,000원이다. 국가유공자에게는 입장료와 주차비가 면제되었다. 공원주차장에 들어오면 식당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공양간을 찾아갔으나 코로나19 사태로 일반인에게는 공양을 제공하지 않고 있었다. 카페에서 빵과 차로 식사를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월정사를 비롯하여 오대산은 문수보살의 성지이다. 월정사 홈페이지(www.woljeongsa.org) 따르면, 오대산 신앙은 자장에 의한 문수신앙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통일신라에 이르면, 보천태자와 성덕왕에 의해서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하는 5만 보살신앙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정립되는 것이, 중앙의 1만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동쪽의 1만 관세음·남쪽의 1만 지장·서쪽의 1만 대세지·북쪽의 1만 미륵보살의 5만 보살이다. 이때부터 월정사는 오대산의 다양한 신앙과 사찰들을 총괄하는 중심사찰의 위상을 확보하게 된다. 월정사는 이후 통일신라 말과 고려 초에는, 9산 선문 중 하나인 강릉 사굴산문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그러다가 고려 말에는 나옹스님이 주석하게 되고, 조선 초에는 나옹문도들에 의한 불사와 정비가 이루어진다. 이후 조선 중기에 이르면 사명당이 주석하고, 또 조선왕실의 외사고(外史庫)가 오대산에 들어오게 되면서 숭유억불기에도 사세가 번성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이번에는 역으로 사굴산문의 본찰인 굴산사가 오대산의 영향권으로 편입되기에 이른다(출처 : 월정사 홈페이지, www.woljeongsa.org).

  

고은 선생의 『절의 찾아서』를 보면, 월정사는 월정사의 밤에 안다고 하였다. 밤도 달밤이어야 한다. 자장스님이 오대산의 하현달을 바라보고 법열을 느끼면서 절 이름을 지을 만큼 이곳의 달밤은 자연법이(自然法爾)의 극치라고 소개하고 있다. 언젠가 하현달이 뜰 때를 잡아 템플스테이를 와보고 싶으나 그런 날이 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언제 또 와 볼 수 있을까라는 아쉬움을 남기며 차를 몰아 남대 지장암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