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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공주시 마곡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0. 9. 12. 11:26

2020년 8월 29일에 대한불교 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답사계획에 따라 여섯 번째 답사지로 제6교구 본사인 태화산(泰華山) 마곡사(麻谷寺)에 다녀왔다. 마곡사는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로 966(운암리)의 태화산 동쪽 산허리에 자리 잡고 있다. 마곡사는 충남의 수사찰(首寺刹)로 계룡산의 동학사, 갑사, 신원사 등을 말사로 두고 있다.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고 회자되듯이 봄에는 마곡사의 경치가, 가을에는 갑사의 경치가 좋다는 뜻이다. 또한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사이에 백범 김구 선생이 이 절에서 만 3년을 머무른 것으로도 유명하다. 풍수학적으로도 마곡사가 위치한 곳의 물과 산의 형세는 태극형이라고 하여 『택리지』·『정감록』 등의 여러 비기(祕記)에서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고 있다.

   

마곡사 홈페이지(http://www.magoksa.or.kr)에 있는 주지 스님이신 원경 스님의 인사말이 인상적이다. “충남 불교를 대표하는 교구 본사 마곡사는 수행과 포교의 큰 수레바퀴를 사부대중과 함께 굴리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관음성지 마곡사 스님들이 여법하게 수행하고 정진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고, 지역마다 복지를 실천하는 본말사가 되고자 합니다. 또한 충정의 고장, 충남의 정신문화를 이끄는 중심 사찰로 자리매김하고자 합니다.” 충남의 수사찰(首寺刹)로서의 위상을 말해주는 인사말이다.

   

마곡사 홈페이지(http://www.magoksa.or.kr)에 따르면, 마곡사 사적입안(事蹟立案)의 기록에 따르면 '마곡사는 640년(백제(百濟) 무왕(武王) 41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고려 명종(明宗) 때인 1172년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고 범일(梵日) 대사가 재건하였다고 한다. 도선국사(道詵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각순(覺淳) 대사가 보수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러 ‘영산전(靈山殿)’이란 사액(賜額)을 한 일이 있다.
   
마곡사는 절 가운데를 흐르는 개천을 사이에 두고 남쪽 영역과 북쪽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남쪽 영역에 먼저 사찰이 조성되었다가 북쪽 영역으로 확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개울을 끼고 속세의 탐진치를 내려놓는 자세로 걷다 보면, 오른쪽 남쪽 영역으로 들어가는 해탈교를 건너 피안의 세계로 들어간다. 처음으로 만나는 해탈문에는 금강역사 두 분과 코끼리를 타고 계시는 문수보살과 호랑이를 타고 계시는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해탈문을 지나면 천왕문을 만난다. 남쪽 영역에 있는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북쪽 영역의 대광보전 앞마당까지 이르는 길은 지그재그 형식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커다란 전나무 두 그루가 있고 조금 지나면 마곡사 북쪽 구역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지나게 된다. 다리를 지나면 오른쪽에 아(亞)자형 범종루가 있고 정면에는 오층석탑과 대광보전이 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 뒤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아미타불, 약사여래불이 협시하는 대웅보전이 있다. 이곳의 약사여래는 약사유리광불로 표현되어 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이 대웅보전 아래쪽에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이한 가람 배치이다. 대광보전을 바라보고 왼쪽에는 조사전과 김구 선생이 묵었다는 당우가 있다.
   
해탈교에서 해탈문, 천왕문을 지나 오층석탑과 대광보전을 거쳐 부처님이 계시는 대웅보전에 이르는 길을 고저(高低) 공간으로 구분짓지 않고 지그재그식의 경로로 접근하도록 수평적으로 구분짓도록 배치한 것도 특이하다. 방위적으로는 남서쪽의 곤(坤) 방에서 해탈교를 건너서 동북 방향인 간(艮) 방에서 대웅보전에 이르는 가람 배치이다. 의도적인 가람 배치인지 우연적인 가람 배치인지 궁금하다.
  
북쪽 영역의 대표적인 전각은 대웅보전과 대광보전이다. 마곡사의 대웅보전은 보물 제801호로 1785년에서 1788년에 걸쳐 중수되었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옆에 약사여래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 아래쪽에 위치한 대광보전(大光寶殿)은 마곡사의 중심 법당으로 1788년에 중창되었으며 보물 제802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광보전 내부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이 건물 서쪽에서 동쪽을 바라보도록 특이하게 봉안되어 있다. 대광보전의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으로 1788년 조성된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6대보살, 10대 제자, 용왕과 용녀, 사천왕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로자나 부처님 뒷벽에는 18세기 후반 조선 회화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백의수월관음도가 봉안되어 있다.
   
대광보전 앞에는 원나라의 건축양식에 영향을 받은 라마교 형식의 5층 석탑이 있다. 이 탑 역시 보물 제799호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아(亞)자형의 범종루(梵鐘樓) 등이 있다. 또한 참배객들이 보기 힘들지만 마곡사에는 괘불(掛佛) 1폭, 목패(木牌), 세조가 타던 연(輦), 고려 청동 향로가 있으며, 보물 제270호인 감지금니묘볍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제6권과 보물 제269호인 감지은니묘법연화경 제1권이 보존되어 있다.

  

다시 남쪽 영역으로 오면 명부전과 영산전을 만난다. 명부전은 1939년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는 전각으로 조선 말기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에 처마 끝이 높이 올라가 있어서 웅장함을 과시하는 조선말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활주도 없이 처마 끝이 멋지게 치달아 오르는 지붕이 아름답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님을 중앙 불단에 모시고 있으며 좌우에 ‘ㄷ’자형의 불단을 만들어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님을 모셨다. 명부전 옆으로 산길을 조금 올라가면 산신각을 만난다. 산신각 탱화에는 여인들이 그려져 있다. 도반의 기억으로는 예전에는 할머니 그림이 있는 몇 안되는 산신각이었다고 한다.
   
영산전은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최근에 보수를 마친 전각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과거 칠불과 함께 천불이 모셔져 있는 영산전에 삼천불을 모시는 불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곡사 홈페이지(http://www.magoksa.or.kr)에 따르면, 영산전은 현재 남아있는 마곡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1650년에 중수돼 현재 보물 제8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영산전에는 고려 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목불 7구가 남아있다. 사적입안의 기록에 따르면 영산전에는 세조의 친필인 방서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영산전은 본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의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당시의 광경인 영산회상을 재현해 모신 곳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10대 제자, 16나한 혹은 500나한을 모시기도 한다. 그러나 유독 마곡사의 영산전에는 한 가운데에 과거 칠불을, 그 주위에 1000분의 부처님을 모셨다. 과거 칠불이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이 세상에 출현하였다고 하는 일곱 분의 부처님을 일컫는다. 마곡사의 영산전은 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곡사에서 가장 영험이 큰 전각으로, 특히 어진 정승과 용맹스러운 장수를 만들어 낸다는 군왕대의 모든 기운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의 큰일을 할 인재 배출을 원하는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고 소원을 성취하고 있다고 한다.

   

마곡사라는 이름이 지어진 설화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마곡사에는 대웅보전과 대광보전에 얽힌 설화가 있다. 2층 누각으로 지어진 대웅보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전면 기둥과 내부에 있는 4개의 기둥 등이 싸리나무 기둥이다. 화엄사 싸리나무 기둥과 같이 빗자루를 매는 싸리나무가 아니고 사리함을 만들던 느티나무 기둥이다. 전면에도 싸리나무가 있지만 내부에 있는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는 설화가 있다.
  
마곡사 홈페이지(http://www.magoksa.or.kr)에 따르면, 설화의 내용인즉 이렇다. 사람이 죽어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가면 ‘그대는 마곡사 싸리나무 기둥을 몇 번이나 돌았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많이 돌수록 극락길이 가깝기 때문이다. 아예 돌지 않았다고 하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생에서 아들이 없는 사람에게는 마곡사의 싸리나무 기둥을 안고 돌면 아들을 낳는다고 일렀다고 한다. 이런 재미난 전설로 인해 지금도 이 싸리나무 기둥은 윤기가 나고 손때가 묻어있다. 아들을 낳고 싶은 아낙이 많아서이다.

  

마곡사 홈페이지(http://www.magoksa.or.kr)에 따르면,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광보전에는 ‘삿자리를 짠 앉은뱅이’ 전설이 담겨 있다. 그가 부처님께 공양 올릴 삿자리를 짜기 시작하면서 앉은뱅이로서의 삶을 거두고 걸을 수 있게만 된다면, 그 자비 광명을 얻게만 된다면 이생을 넘어 세세생생 보시하는 삶을 살겠노라고 맹세하고 부처님께 의지하며 생활한 지도 어느덧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는 이미 자신이 너무도 주제넘는 소원을 품었던 터라 더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가진 업보가 그 얼마나 큰데 감히 부처님께 그런 소원을 빌다니! 얼마나 더 공덕을 쌓아야 그동안 지은 억겁의 죄업을 다 씻을 수 있을 것인가, 슬프도다 슬프도다.’ 지난 100일 동안의 기도 끝에 깨달은 것은 첫째도 참회요, 둘째도 참회였다. 그러한 나날이 계속될 수록 그는 걷게 되는 것을 염원하기보다는 길가에 무심히 핀 들꽃이 소중하고 그것이 살아있음을,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며 그 무엇에건 감사하게 되었다. 들꽃과 함께 호흡하고 나를 느끼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는 부처님께 감사했다. 일체의 삼라만상에 부처님의 자비를 회향 하겠노라고 다짐하는 날이 늘어갔다. 그렇게 100일이 채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삿자리가 완성되었다. 그는 부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치 않은 다리를 끌고 부처님께 기어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 법당을 나왔다. 그가 걸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그는 어느새 걷고 있었다고 한다.(참고 자료 : 마곡사 홈페이지, http://www.magoksa.or.kr의 소개글을 기본으로 일부 내용을 첨언하였음을 밝힌다).

  

부처님의 공덕을 믿는 신심과는 별도로 도반과 함께 현대 과학적으로 이 설화를 풀어보았다. 아마 그 앉은뱅이는 영양 실조로 비타민 B1이 부족하여 각기병에 걸려서 걷지를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절에 들어와 100일 동안 절에서 공양을 받아 먹으며,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각기병이 나아서 걸어나왔을 거라고 추측을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