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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아산시 봉곡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0. 9. 12. 11:35

2020년 8월 29일에 대한불교 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답사계획에 따라 여섯 번째 답사지로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를 답사한 후 말사 중에서 만공스님께서 크게 깨달음을 얻으신 봉곡사에 다녀왔다. 봉곡사는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도송로 632번길 138(송악면 유곡리 595) 봉수산(鳳首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이 창건한 사찰이다. 마곡사의 말사로는 계룡산의 신원사, 갑사, 동학사 등 유명한 절들이 많지만, 이곳 봉곡사는 만공스님께서 깨우침을 얻으시고 오도송을 읊으신 곳으로 유명하다. 주차장에서 절에 이르는 소나무 숲은 장관이다. 일제강점기 때 송진 채취를 한다고 칼로 수피를 벗겨 놓은 생채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걸어 올라가게 된다. 아산시에서는 이 소나무 숲에 천년의 숲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있었다.

      

절 입구에는 만공스님을 기념하는 만공탑이 있다. 만공탑에는 민공스님의 유명한 휘호인 세계일화(世界一花)가 새겨져 있다. 만공탑을 보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약사여래께서 내려다 보시는 음수대가 있다. 맞배지붕 주심포 건물인 대웅전은 해체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모두 해체되어 있었다. 가건물에 모셔진 부처님께 절을 올린 후 해탈전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등 네 분의 보살님들이 나란히 모셔져 있었다. 이곳을 돌아 요사체 쪽으로 들어가 보니 전면으로 좌청룡과 우백호가 겹겹이 교차하며 멀리 안산이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같이 갔던 도반도 금방 이곳이 대웅전 자리네요라고 말한다. 왜 이렇게 좋은 자리를 놓아두고 요사채가 자리잡고 있을까 의아하다. 아마 임진왜란 때 폐사가 되었다가 중창하는 과정에서 건물을 하나씩 짓다보니 그리되지 않았을까라고 추측해본다.

     

마곡사 홈페이지(http://www.magoksa.or.kr)의 말사 소개자료에 따르면, 봉곡사는 887년(진성여왕 1)에 도선이 석가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에 지눌이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석암이라 바꾸었다고 전해지지만 지눌의 활동 연대와 맞지 않아 신빙성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1419년(세종 1)에 함허가 중창하였으며, 산 이름을 봉수산이라 하였다. 1584년(선조 17) 3월 화암이 중수하여 봉서암으로 고쳐 불렀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타 폐사되었다. 그뒤 1646년(인조 24)에 중창하였으며, 1794년(정조 18) 경헌과 각준이 중수하고 지금의 이름인 봉곡사로 고쳤다. 1825년(순조 25)에는 요사를 중수하고 2층 누각을 신축하였으며, 1872년(고종 9) 서봉이 요사를 증축하였다. 1891년 다시 서봉이 법당을 중수하였으며, 1931년에도 한 차례 중수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에 따르면, 대웅전 안의 후불탱화에 관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세로 75㎝, 가로 43㎝인 이 관음탱화(觀音幀畵)는 조선시대의 작품으로 원래 이 절에 봉안되어 있던 것이었는데, 1909년에 이 절에 있던 병든 승려가 약을 준 일본인에게 완쾌된 뒤 선물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1958년 4월 5일 구원회(具沅會)가 일본에서 이 불화를 가져와 다시 봉안했는데, 그 유래가 불화갑(佛畫匣) 뚜껑에 쓰여 있다. 현재는 비구니가 머물고 있으며, 약수와 15m 높이의 향나무 및 주위에 울창한 송림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