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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기쁨/책속의 한줄

오강남(2012), 『종교란 무엇인가』를 읽다.

아진돌 2021. 2. 14. 15:05

오강남(2012), 『종교란 무엇인가』, 경기도 파주시 : 김영사, 1판1쇄 2012.9.27. 1판6쇄 2019.3.26.

 

2021년 2월 14일 설날 연휴 마지막 날에 비교 종교학자이신 오강남이 지은 『종교란 무엇인가』를 읽었다.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한 철학적 연구결과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으나 내가 원하는 바를 얻지는 못했지만, 종교와 관련된 많은 이슈들에 대해 폭넓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다. 인간이 왜 종교를 갖게 되었고, 종교가 왜 우리 인류에게 이처럼 커다란 영향을 주는가 등에 관심이 있었던 나로서는 속 시원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캐나다 교민들을 위해 필자가 배우고 깨달은 바를 나누기 위해 신문에 게재했던 내용을 발간한 책을 보완한 책이라는 말이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철학적 책이라기보다는 차원 높은 설교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나로서는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주제 자체에 대해서는 얻은 바가 없으나, 종교의 정의에 대한 저자의 말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누구나 종교의 정의에 대해 물어 본다는 말을 하며 저자가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실제(Reality) 혹은 실상의 점점 더 깊은 차원을 깨달음으로 얻게 되는 변화의 체험, 변화의 체험에서 얻게 되는 자유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 힘쓰는 것이 바로 종교와 관련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이론과 교리만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체험을 해야 하며, 체험을 통해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Change의 정도가 아니라 Transformation 즉, 탈바꿈이 있어야 한다.”

 

이 책은 머리글 부분이 여는 글과 들어가면서1, 들어가면서2로 구성되어 있는 조금은 특이한 형식으로 시작한다. 책의 대부분의 내용 자체가 비교 종교학 측면에서 바람직한 종교가 가져야 할 덕목들 위주로 현재 한국 종교계 특히, 기독교계의 문제점이나 이슈들을 다루고 있어서 보수적인 종교계로부터 큰 반발을 살 수 있는 내용이라 조심스럽게 시작한 듯하다. 저자는 일관되게 “참된 종교의 길, 진리의 길은 실재에 대해 이미 주어진 설명이나 관념에 만족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운 차원, 더 깊은 차원의 실재를 발견 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열어놓는 ‘열림’의 길이다”라고 말한다.

 

저자의 다음과 같은 비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의 절망적인 극한상황을 악용하여 전문적으로 지푸라기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중략) 참된 종교라면, 지푸라기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고 그것에만 집착하려는 사람에게 지푸라기에 대한 집념을 버리게 하고, 찬송가의 내용처럼 확고한 ‘생명줄’을 던져 그것을 붙잡도록 일깨우고 도와주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허상을 깨버리고 실상을, 참다운 실재를 보도록 하는 종교가 참된 종교인 것이다.”(44쪽).

 

성경이나 불경을 읽다 보면 앞뒤 내용이 서로 상반되는 말들이 있는 경우에 대해 저자가 좋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건강한 청년으로 자라도록 도우려 할 때, 동생이 밥을 너무 적게 먹으면 밥을 많이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할 것이고, 반대로 너무 많이 먹으면 적게 먹어야 건강해진다고 타이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종교적 체험의 표현은 개인이나 단체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지리적 제반 특수 사정에 따라, 또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고, 우리는 이런 사실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 들일 수밖에 없다.” 예수님이나 부처님께서 개인별로, 상황에 따라 설법하신 내용을 잘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다. 저자는 경전을 문자에 충실하게 해석하려고 하는 것을 ‘성경 우상 숭배’라고 칭하며 경계하고 있다. 또한 경전을 경전으로 읽어야지, 경전에 나오는 여러 가지 고대 신화, 설화, 역사 이야기, 전설에서 오로지 문자적 진리만을 찾으려는 노력을 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자가 내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하는 독설가들의 편향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했던 내세에 대해 저자의 명쾌한 설명이 나를 개운하게 해주었다. “성경을 자세히 정독하면 내세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내세보다는 현세가 중요합니다. 삶과 죽음 자체를 넘어서는 경지로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삶과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고, 이것이 종교가 우리에게 주는 해방감이고 자유입니다. 내세 때문에 벌벌 떨고, 내세 때문에 지금의 삶이 한정된다면 인간은 종교가 줄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 아니예요. (중략) 공자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제자들이 내세가 어떠냐고 질문을 하니, 현세도 모르는데 죽은 다음까지 어떻게 아냐고 대답하셨습니다. 즉, 내세라는 것을 상징적, 은유적으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