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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기쁨/책속의 한줄

서경수 글, 김현준 엮음(2018), 『기상천외의 스님들』를 읽다.

아진돌 2021. 2. 16. 19:09

서경수 글, 김현준 엮음(2018), 『기상천외의 스님들』, 서울 : 효림출판사, 초판1쇄 2018.10.4.

 

2021년 2월 14일 설날 연휴 마지막 날에 노은도서관에 책을 대출하러 갔다가, 불교 서적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대출해 왔다. 원효대사, 도선국사, 나옹선사부터 경허선사, 수월선사, 해월선사까지 10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서경수 교수가 1984년 10월에 쓴 서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글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쓴 글들이다. 이 책은 서사모(서경수 교수를 사랑하는 모임)에서 선생의 32주기 한 달 전인 2018년에 펴낸 책이다. 기상천외의 스님들이라는 제목은 조금 지나친 듯하다. 10분의 스님들의 기행을 소개한다기보다는 깊은 사상을 나름대로 정리한 책이라고 본다.

 

스스로 파계의 뒷문을 열어 보였던 원효대사, 풍수지리와 도참설로 유명한 도선국사, 고려말의 나옹선사와 신돈 등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 말의 활해선사, 허주스님과 영산스님, 환옹선사, 경허선사에 대한 일화와 일제강점기의 수월선사와 혜월선사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고승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보살도를 행하시는 스님들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일어난다.

 

책에 있는 내용 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체 도인으로 알려진 활해(闊海)선사는 어느 여름날 비가 오지 않아 걱정이 태산 같았던 경상도 감사가 해인사로 활해스님을 찾아와 비결이 없는지 물었다. 이에 활해스님은 해인사 용왕상 앞에 이르러 주장자로 용왕의 머리를 탁탁 때리며 꾸짖었다. “왜 비를 내려 주지 않아 백성들을 힘들게 만드느냐?” 그러자 당장 단비가 흠뻑 내려 가뭄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밤 경상감사의 꿈에 용왕이 나타나서 크게 나무라는 것이었다. “비를 내려 달라는 말을 나에게 직접할 것이지, 왜 큰 스님께 부탁해서 남의 머리에 혹만 나게 만드느냐. 다음에는 큰 스님께 고해바치면 혼이 날 줄 알아라.” 용왕은 호통을 친 뒤 사라졌다고 한다.

 

항상 같이 다니던 두 분의 선사이신 허주스님과 영산스님 이야기 중에서도 부부싸움을 하는 집에 담을 넘어 들어가 무조건 용서해 달라고만 말하여 부부싸움을 하던 두 사람이 자기 잘못을 뉘우치게 하신 해주스님의 일화가 감동적이다. 또한 잔치집에 가서 드시라고 들여온 한상차림을 장삼에 싸들고 나가 대문 밖에서 못 들어가고 있던 거지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신 영산 스님의 일화도 감동적이다.

 

경허선사의 제자이신 혜월선사의 이야기는 진정한 보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일화이다. 1920년 경상남도 양산 미타암에 계실 때 부잣집 재를 지내기 위해 장 보러 떠나는 스님의 주머니에는 신도가 주고 간 돈 백원이 들어 있었다. 쌀 한 가마에 7, 8원 할 때니까 큰 돈이다. 장 보러 가다가 빚 때문에 울고 있는 아낙에게 빚 갚으라고 80원을 주고 빚 갚은 후 생활하라고 20원까지 백원을 다 주고 돌아온다. 재 지내는 날 “돈이 떨어졌네” 하면서 자초지종을 모두 설명하였다. 조용히 듣고 있던 재주는 선선히 말했다. “그렇다면 다시 백원을 드리지요.” 그리고는 백원을 주면서 “정말 진짜 재를 잘 지냈다.”하더란다. 혜월 스님의 일화 중에 하나 더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절에서 진 빚 2백원을 갚으러 장터에 갔다가 나무꾼들에게 나누어 준 후 나중에 빚 받으러 온 사람에게 “별 놈 다 보겠네. 돈을 꼭 저한테만 갚아야 갚은 것이 된다더냐”리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빚을 준 사람은 그 자리에서 차용증을 찢어버렸다고 한다. 훌륭한 스님 밑에 있는 신도들도 역시 훌륭함을 본다.

 

한국 선종의 중흥조라고 높이 추앙받고 있는 경허선사(1849-1912) 밑에서는 큰 스님들이 많이 배출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만공스님과 충남 홍성에서 탄생하신 수월선사,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서 탄생하신 혜월선사 등이 계신다. 얼마 전에 마곡사 말사 순례를 하는 중에 경허선사가 계셨던 천장암을 진입로 공사로 인해 못 가본 것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