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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대덕구 삼정동 충주박씨 박효함의 묘

아진돌 2021. 3. 21. 12:49

2021년 3월 19(금)에 대청호 오백리길 제1구간 두메마을길을 걷는 도중에 대전광역시 대덕구 삼정동 이촌마을에 있는 충주박씨 박효함(朴孝諴)의 묘를 돌아보았다.  청간재(聽澗齋) 박효함(朴孝諴, 1387∼1454)은 충주박씨이며 당상관으로 청주목사(淸州牧使)를 지내며 선정을 베풀었고, 강릉 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에 이르렀으며, 사후에 이조참판으로 증직받았다. 세종실록에 청주목사로서 5회, 강릉부사 임명과 관련하여 문종실록에 7회 언급되어 있는 분이다.

 

문종실록에 따르면, 1451년(문종 1년)에 사헌부(司憲府)에서 아뢰기를, “박효함(朴孝諴)은 나이가 이미 65세이므로, 이제 강릉 부사(江陵府使)로 제수(除授)하면 미처 체기(遞期)가 못되어 으레 치사(致仕)하여야 할 것이니, 외임(外任)에는 마땅하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다음날 의정부(議政府)에서 아뢰기를, “경신년 전지(傳旨)에, ‘2품 이상에는 나이 젊은 자가 드물어서 임관(任官)할 즈음에는 실로 마땅한 사람을 얻기 어려운 까닭에 어쩔 수 없이 나이 늙은 자도 수령(守令)으로 제수(除授)하니, 앞으로는 2품 이상인 수령으로 육기(六期) 안에 나이가 70에 가깝고 만 30삭(朔)이 된 자는 개월(箇月)을 헤아리지 말고 곧 계달(啓達)하라.’ 하였습니다. 지금 강릉 부사(江陵府使) 박효함(朴孝諴)은 비록 2품은 아니나 당상관(堂上官)이니, 청컨대 이 법에 따라 보내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는 기록이 있다. 박효함은 65세의 나이에 강릉부사로 부임해 임지에서 순직하였다. 충주박씨 강릉공파의 파시조가 됐으며 사후 청렴결백한 관리에게 표창하는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됐다.

 

대덕문화원 홈페이지(http;//ddcc.or.kr/)의 ‘대덕의 인물’에 소개된 박효함(朴孝諴)의 소개글을 참고로 여기에 옮겨 실으면 아래와 같다. 박효함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충주이다. 성균진사로서 후에 병조참의에 증직된 박진의 아들이다. 조부 박광리는 민부 의랑으로서 개성 소윤(小尹)을 세 번이나 하였는데, 공정한 판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조부는 무수동에 살던 합천이씨 이춘계(전리정랑)의 사위가 되었고, 부친 박진은 이 지역의 거족인 부안임씨 임건의 사위가 되었다. 이러한 연혼으로 인하여 충주 박씨들이 이 지방(서구 괴정동, 일명 지치울)에 와서 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박효함의 4형제의 이름은 각각 ‘효제충신(孝悌忠信)’이 들어가도록 지었다. 이는 아버지 박진이 아들들이 모두 나쁜 데로 떨어지지 않게 하여 능히 아름다운 일을 지키게 하려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 한다. 박효함은 효제를 다하고 청렴하고 정직하며, 다스리는 제주가 있어서 명성이 우림(왕의 숙위소)에까지 알려졌다. 1430년(세종12) 충청도 보령에 해적의 침입이 우려되어 조정에서 여러 번 이를 다스릴 사람을 찾았으나 적격자를 얻지 못하였는데, 박효함이 청렴결백하고 행동이 지극하다 하여 천거되었다. 이에 박효함은 순찰사 최윤덕, 감사 박안신과 더불어 성의 동쪽 1리쯤에 당산의 양지바른 곳을 찾아 성을 쌓았다. 두 달이 안 되어 성이 완성되니 백성들은 적은 노력으로 도적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박효함은 이듬해 청주목사가 되어 공적이 많아 청백리로 기록되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조정에 돌아와 첨추가 되었고, 다시 강릉 대도호부사로 임명되어 나갔는데 1454년 관청에서 죽으니 향년 68세였다.  임금은 부음에 애도하였고 특별히 예장케 하였으며, 청백리라 하여 이조참판에 증직 되었다. 묘소는 대덕구 삼정동(정당촌)에 있고, 서거정이 지은 묘비(1800년, 정조 24)가 세워져 있다(출처 : 대덕문화원 홈페이지 http;//ddcc.or.kr/).

 

박효함의 두 아들이신 박원직(朴原直)과 박원창(朴原昌)의 묘도 박효함의 묘 뒤쪽에 나란히 있다. 박원직의 묘비에는 通政大夫司憲府監察(통정대부사헌부감찰)라고 적혀 있고, 박원창의 묘비에는 通政大夫行掌隷院僉正(통정대부행장예원첨정)라고 적혀 있다. 행(行)이란 관직보다 품계가 높은 것을 의미하지만, 통정대부(通政大夫) 품계는 정삼품(正三品)이니 조금 이상하다.

 

 

(박효함의 아드님이신 박원직과 박원창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