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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선운산 선운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2. 1. 12. 10:55

2022년 1월 6일(목)에 대한불교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답사계획에 따라 24번째 답사지로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아산면 삼인리 500)에 있는 선운사(禪雲寺)에 다녀왔다. 선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이다. 선운사 입구의 개울 건너에 있는 천연기념물 송악과 대웅전 뒤쪽의 동백꽃으로 유명하고, 산내 암자인 도솔암과 함께 도솔암 서편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으로 유명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 답사를 마치고 제주도에 있는 제23교구 본사인 관음사 답사를 뒤로 미루고 선운사를 찾았다. 겨울의 산사는 겨울 나름대로 멋지다. 지금은 대웅전 지붕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대웅전 전체가 거푸집 같은 가건물 속에 들어 앉아 있었다. 사시예불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으나 조금 늦게 대웅전에 들어가니 스님 혼자 예불을 드리고 계셨다. 스님께서 어찌나 조용히 예불을 드리시는지 칠정례를 올릴 때도 예불 소리를 제대로 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선운사 홈페이지(http://www.seonunsa.org/)에 소개된 유래에 따르면, 선운산으로도 불리는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고있는 선운사는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와 함께 전라북도의 2대 본사로서 오랜 역사와 빼어난 자연경관, 소중한 불교 문화재들을 지니고 있어 사시사철 참배와 관광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특히 눈 내리는 한겨울에 붉은 꽃송이를 피워내는 선운사 동백꽃의 고아한 자태는 시인과 묵객들의 예찬과 함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 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재위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 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시대적ㆍ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검단 선사의 창건설이 정설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단 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 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다. 검단 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지역에는 전쟁 난민이 많았는데, 검단 스님이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봄, 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 이름도 '검단리'라 하였다. 선운사가 위치한 곳이 해안과 그리 멀지 않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염전을 일구었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보아, 염전을 일구어 인근의 재력이 확보되었던 배경 등으로 미루어 검단 스님이 사찰을 창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절을 크게 중창한 이는 행호 극유(幸浩 克乳) 스님이다. 1472년(성종 3) 선운산의 한 암자에 머물며 수도하고 있던 행호 스님은 구층 석탑만이 외롭게 남은 채 폐허화된 선운사를 보고 안타까이 여겨 중창을 발원하였다. 이듬해(1473년) 제자 종념(終念) 스님과 함께 상경하여 성종의 작은아버지 덕원군(德源君)에게 중창의 뜻을 밝히고 도움을 청하자, 덕원군은 재물과 함께 직접 원문(願文)을 써주었다.

 

이에 나주 보을정도(寶乙丁島)에 가서 재목 1천여 그루를 구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기와 20여 가마를 구워, 1474년 가을에 2층의 장륙전(丈六殿)과 관음전을 완공하였으며, 이듬해 봄에는 선왕(先王)의 영혼을 추모하는 수륙재(水陸齋)를 크게 열었다. 1476년에는 천불대광명전을 조성하였고, 1481년에는 모든 건물의 단청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지장전, 동상실(東上室), 금당(金堂), 능인전(能仁殿)을 짓고 영산회 등 53불회탱(五十三佛會幀)을 조성하였다. 이와같이 10여 년에 걸친 극유스님의 중창불사로 인해 선운사는 옛 모습을 되찾아, 숭유억불의 조선 사회에서도 왕실의 원찰(願刹)로서 법등(法燈)을 환히 밝히게 되었다.

 

현존하는 전각은 대웅보전과 관음전, 영산전, 팔상전, 명부전, 산신각, 만세루, 천왕문이 있고, 대웅보전 앞에는 6층 석탑과 괘불대, 당간지주, 석주 등이 있으며, 산내암자로는 참당암(懺堂庵), 도솔암(兜率庵), 동운암(東雲庵), 석상암(石上庵) 등 네 곳이 있다. 선운사 대웅보전은 보물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고, 영산전 목조삼존불상, 육층석탑, 범종, 만세루, 백파율사비 등이 지방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사내에 있는 선운사 박물관에는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279호)을 비롯한 고려 불상, 조선시대 탱화, 『석씨원류』ㆍ『선운사사적기』 등 문화재가 전시되어 있으며, 경내의 동백나무숲, 장사송. 송악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출처 : 선운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