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조계종 교구본사 순례

운악산 봉선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2. 1. 29. 13:39

2022년 1월 22일(토)에 대한불교조계종 25개 교구 본사 답사계획에 따라 25번째 답사지로 경기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2(진접읍 부평리 255) 운악산 기슭에 있는 봉선사(奉先寺)에 다녀왔다. 봉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다. 지난 2020년 7월 18일에 대한불교조계종 교구 본사 답사를 시작하여 첫 번째 답사지로 조계사를 다녀온지 1년 6개월 만에 25교구 본사인 봉선사를 다녀왔다. 아직 제주도에 있는 제23교구 본사인 관음사를 가보지 못했으나 육지에 있는 24개 교구 본사를 모두 둘러보았다. 그동안 코로나19 창궐로 한참 동안 답사를 중지할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다. 이번 답사는 회향하는 마음으로 다녀왔다.
 
아침 일찍 출발하였으나 남양주시까지는 3시간 40분 정도 걸린 듯하다.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다시 창궐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남양주시의 맛집으로 소문난 콤비식당을 지나쳐 봉선사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봉선사로 향했다. 봉선사는 국립수목원으로 이름이 바뀐 광릉수목원 옆에 있다. 세조대왕의 능인 광릉을 지키기 위한 절이기도 하다. 참배객들에게는 아주 편하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절이다. 우선 입장료나 주차비를 받지 않아 자유롭게 들어 갈 수 있고 대웅전이 있는 곳까지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좋다. 대웅전은 1960년대에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지어져 있고 큰법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해우소에 붙어 있는 입측오주 즉, 측간에 들어가 외우는 다섯가지 주문이 인상적이다. 사진 맨 끝에 덧붙였다.
 
오늘도 봉선사에서는 지장전과 관음전 두 곳에서 재(齋)를 지내고 있었다. 망자들의 유해를 모신 개건당(開建堂)이 있어서 이곳에 망자를 모신 분들은 이 절에서 재를 지낼 것 같다. 재를 지내는 비용도 투명하게 300만원이라고 공개해 놓은 점도 인상적이다. 49재를 지내는 것을 미신이라고 몰아치는 오만보다는 망자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후손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내는 의식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전에는 왕의 능침을 수호하기 위한 절이었지만, 지금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절이라는 생각으로 포근한 마음을 갖고 머물렀다.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로 매도되어 잊혀져 가는 춘원 이광수를 기념하기 위한 ‘춘원 이광수 기념비’와 한 때는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이후락 씨의 ‘중창대시주 이월파 공덕비(重創大施主 李月波 功德碑)’를 보지 못하고 내려온 것이 조금 아쉽다.
 
봉선사(奉先寺) 홈페이지(http://www.bongsunsa.net/)에 따르면, 봉선사는 교종 수사찰(首寺刹)의 종풍과 선종 사찰의 법맥을 그대로 전승하고 있는 대가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1550년(명종 5)에 이 절이 선교 양종 중 교종의 수사찰(首寺刹)로 지정되어 전국의 승려 및 신도에 대한 교학진흥의 중추적 기관이 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봉선사는 서기 969년 고려 광종 20년에 법인 국사께서 창건하고 운악사라고 하였다. 그 후 서기 1469년(예종 1년)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가 세조의 능침을 이산에 모시고는 광릉이라 하고, 이어 당사를 초창하여 선왕의 능침의 명복을 비는 자복사로 삼고 89칸 규모로 중창한 뒤 봉선사라 하였다.
 
봉선사는 서기 1592년(선조 25년)의 임진왜란과 1636년(인조 14년)의 병자호란에 소실된 것을 낭혜 대사(1539년)의 뒤를 이어 계민 선사(1637년)가 중건하고, 1749년과 1848년에 다시 중수해 고아하고 장중한 대찰의 면모를 되찾았다. 1950년 한국 전쟁 때 16도 150칸의 건물이 전소되어 1959년 화엄 스님에 의해 범종각이 복원되기 시작하였다. 오늘의 봉선사는 1960년 무렵부터 재건 불사를 일으킨 가람의 모습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에 소개된 글에 따르면, 현존하는 당우로는 큰법당, 삼성각, 개건당(開建堂), 방적당(放跡堂), 운하당, 범종각, 청풍루(淸風樓), 요사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큰법당은 대웅전과 같은 법당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한글 현판을 단 것이다. 법당 사방 벽에는 한글 『법화경』과 한문 『법화경』을 동판에 새겨놓아 이채롭다. 문화재로는 보물 제397호로 지정된 남양주 봉선사 동종을 비롯하여 1903년에 그린 칠성탱화, 사찰 입구의 보운당 부도(報雲堂 浮屠) 등이 있다. 그리고 큰법당 앞에는 1975년에 운허가 스리랑카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 1과를 봉안한 5층탑이 있으며, 1981년에는 운허의 부도탑을 세웠다.
 
범종루 옆에는 대의왕전(大醫王殿)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 약사전이 있고, 약사전 옆에는 연리지(連理枝) 단풍나무가 있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전통 건축물을 모방하여 지어진 큰법당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전면 3칸 건물로 독성각, 북두각(北斗閣), 산령각이라는 세 개의 현판이 걸려 있는 삼성각과 하나의 돌을 파서 만든 당간지주도 눈여겨 볼만 하다. 사찰도 아름답지만 앞에 연못이 있고 연못 주위로는 많은 불상이 있다. 정원이 커서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이 밖에도 사찰 안에는‘춘원 이광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또한 중창대시주 이월파 공덕비(重創大施主 李月波 功德碑)가 있다. 이월파(李月波)는 유신 초기 중앙정보부장 이후락(李厚洛)씨라고 한다. 또한 근처에 있는 승과원(僧科圓) 비(碑)에는 이곳이 명종 7년에 스님들의 과거(僧科)가 열려서 서산 대사, 사명대사 등이 응시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 절 옆에 있는 광릉은 사적 제197호이며, 천연기념물 제197호인 크낙새가 주변 숲에 서식한다. 광릉 근처에는 국립수목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