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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대도호부 관아와 국보 객사문을 둘러보다

아진돌 2024. 2. 24. 16:32

2024년 2월 28일(일) 대전한겨레산악회를 따라서 해파랑길 8구간(강릉 구간) 38코스를 걷는 중에 강원 강릉시 임영로131번길 6(용강동 58-1번지) 일대에 있는 강릉대도호부 관아 일대와 강릉시 경강로 2045(명주동 38-1)에 있는 칠사당을 둘러보았다. 강릉과 원주의 첫 글자를 따서 강원도라는 도명을 지을 정도로 예전에는 강릉이 큰 도시였으며, 대도호부가 설치되었다는 것을 보면 중요 지방 도시였음을 알 수 있다.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건물터이다. 강릉 읍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의 가장 북쪽에는 임영관(臨瀛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객사 건물이 복원되어 있고, 그 앞에는 부사의 관사로 추정되는 중대청이 있으며, 그 남쪽으로는 국보(예전의 국보 제51호)인 강릉 임영관 삼문 즉, 객사문이 자리하고 있다. 객사문 남쪽에는 강릉부 동헌을 복원해 놓았고 그 남쪽에는 강릉대도호부 관아 정문이 있다. 객사문 옆으로는 의운루라는 정자가 있고, 정자 아래쪽 큰 길가에는 칠사당이 있다.
 
강릉대도호부 관아는 규모가 꽤 큰 관아였지만, 나주 등 다른 지방 도시의 객사들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일제강점기 때 객사문과 칠사당을 제외하고 대부분 훼손되었다. 가장 큰 건물인 임영관 건물들도 발굴 복원된 지 겨우 2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새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되기 전에는 관아 터가 큰길 건너 남쪽까지 이어져 있었으나, 중간에 도로를 내어 훼손되면서 큰길 남쪽은 일반 주택지가 되었다. 다만 옛날 강릉읍성의 남쪽 문인 어풍루가 있던 자리에 표지판이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만 든다.
 
일제는 1927년에 객사를 헐고 이곳에 강릉보통공립고등학교를 세웠고, 그 후 1967년에 강릉경찰서가 자리잡고 있었다. 1993년에 강릉시청을 세우려고 신축 기공식 후 관상수를 옮겨 심던 중 유물이 쏟아져 나와 발굴조사를 하고 복원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남의 나라 땅에 와서 관공서 건물들을 훼손한 역사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시청사 건설공사를 중단했던 강릉시의 결정에 박수를 보낸다. 1994년 7월 11일 강릉 임영관지라는 명칭으로 사적 제388호로 지정되었다가, 2014년 11월 27일 강릉 대도호부 관아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객사(客舍)는 임금을 상징하는 ‘전(殿)’ 자를 새긴 나무 패인 궐패(闕牌)를 모셔놓고,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나 사신들이 머물던 곳으로서 관아에 관련된 시설 중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시설에 해당된다. 강릉 객사는 중앙에 궐패를 모신 전대청 건물이 있고 중앙에 걸려 있는 ‘임영관’이란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전대청을 바라보고 좌측과 우측에는 지붕이 조금 낮은 건물인 서헌과 동대청이 날개처럼 붙어 있다. 이곳은 문관과 무관이 머물던 숙소이다.
 
국보인 임영관 삼문 즉, 객사문은 배흘림 기둥에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로, 그 중후 미와 구조의 정교함은 우리나라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드문 건축물이다. 국가문화유산포탈에서 소개한 글을 보면, 객사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간결한 형태로 꾸몄다. 또한, 기둥의 배흘림은 그 어느 건물보다도 심하며, 전체적으로 볼 때 아주 오래된 인상을 주며 장식화 경향이 심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며 수덕사 대웅전보다 건축 연대가 앞선 것으로 생각된다. 절집이 아닌 목조건물로는 이 객사문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국가문화유산 포탈에서 강릉 칠사당(江陵 七事堂)을 소개하고 있는 설명을 인용하면, 칠사당은 조선시대 지방 수령의 집무처로 사용되어 온 건물로, 칠사당이라는 명칭은 조선시대 수령의 주요 업무가 칠사(七事)로 규정되었던 데서 연유하여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칠사란 농사, 호구, 교육, 병무, 세금, 재판, 풍속을 말한다. 칠사당의 최초 건립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32년(인조 10)에 중건하고, 1726년(영조 2)에 확장‧중수하였으며, 이후 1867년(고종 4)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칠사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5량가 건물로 평면은 ‘一’자형 본체의 전면 좌측 1칸에 누마루를 설치하였고, 배면에는 1칸을 내달은 ‘┍┙’형태의 특이한 평면이다. 정면 좌측 1칸 누각은 찰미헌으로 추정된다. 칠사당의 실 배치는 중앙 대청마루를 기준으로 좌측은 온돌방 1칸과 마루방 2칸, 누마루 2칸, 그리고 대청에서 누마루로 올라갈 수 있도록 툇마루 앞으로 대청마루보다 높은 작은 툇마루를 덧달았다.(인용문헌: 국가문화유산포탈 – 강릉 칠사당).
 
아래 주소를 클릭하면 2022년에 방문했을 때 포스팅한 내용을 참고하실 수 있다.
https://agindoll.tistory.com/m/5863817

국보 - 임영관 삼문(객사문)
강릉대도호부 관아 정문
맨 뒤부터 전대청, 중대청, 객사문, 동헌, 동헌문이 정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임영관 현판이 결려 있는 전대청 - Daum 카페 대전한겨레산악회 숲향기님의 사진을 모셔왔다.
부사의 관사로 추정되는 중대청 - 임영관 현판이 결려 있는 전대청 - Daum 카페 대전한겨레산악회 숲향기님의 사진을 모셔왔다.
국보 임영관 삼문(객사문)
칠사당
의운루(倚雲樓)
의운루에서 바라본 강릉대도호부 관아 정문
강릉읍성
객사문 사거리 남쪽 코너에 있는 군기청과 작청 옛터 표지판
강릉읍성 남문 위치 표지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