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전하는 아진돌(AginDoll)의 일상 이야기

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경주 불국사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4. 4. 17. 21:22

2024년 4월 14일(일)에 대전 한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2024년 4월 문화탐방 행사에 참여하여 두 번째 탐방지로 경북 경주시 불국로 385(진현동 15-1)에 있는 불국사(佛國寺)에 다녀왔다. 불국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이다. 불국사는 예전 우리 세대에게는 수학여행지로 손꼽히던 사찰이다. 다보탑과 석가탑으로 유명하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번 탐방에서는 관광버스가 주차한 불국사 대형 주차장에서 들어가다 보니 불이문을 지나 범종각 쪽으로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게 되었다. 정문을 통해 들어가면 일주문과 천왕문을 거쳐 반야연지를 구경할 수 있는데 못 보고 지나쳐서 조금 아쉬웠다. 불국사는 토함산 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가람 배치는 산지가람의 형태를 띠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웅전, 비로전, 관음전, 극락전 영역이 회랑으로 구분이 되어있어서 불국토의 서로 다른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대웅전 영역은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불국토이고, 극락전 영역은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이며, 비로전 영역은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이다.
 
불국사 정문으로 들어가면 일주문을 지나 좌측으로 관음반송과 백송 등을 보면서 반야연지 위의 다리를 건너게 되고 천왕문에 이르는 계단을 올라간다. 천왕문을 지나 고목들이 우거진 경내에 도착한다. 불국사의 경내는 석단으로 크게 양분되어 있다. 석단의 위는 부처님의 나라인 불국토이고, 그 밑은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한 중생들의 세계를 나타낸다. 석단에는 대웅전을 향하는 국보 제23호인 청운교·백운교와 극락전을 향하는 국보 제22호인 연화교·칠보교의 두 쌍의 다리가 놓여 있다. 청운교·백운교는 석가모니불의 불국 세계로 통하는 자하문에 연결되어 있고, 칠보교·연화교는 아미타불의 불국 세계로 통하는 안양문에 연결되어 있다.
 
대웅전의 누각에 해당하는 자하문의 좌우에는 임진왜란 후의 중건 때에 만든 동서 회랑이 있었지만 1904년경에 무너졌다. 회랑의 양 끝에 역시 경루와 종루가 있었지만, 동쪽 경루는 일찍이 없어지고, 서쪽의 종루만 남아 있다가, 1973년 복원 때에 좌경루(左經樓)와 더불어 옛 모습을 찾았다. 지금은 옆길로 돌아서 들어가게 되어 있고, 회랑을 지나면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 대웅전에 도착한다.
 
현재의 대웅전 건물은 1765년(영조 41)에 중창된 것으로 다포식 팔작지붕으로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초석과 석단 등은 대체로 신라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이 주불로 모셔져 있고 석가모니불을 바라보면서 왼쪽 즉, 석가모니불 우측에는 과거 연등불이 되기 전의 이름인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이 있고, 좌측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이 협시보살로 모셔져 있다. 다시 제화갈라보살 우측에는 10대 제자 중 부처님 시봉을 드시던 아난(阿難) 존자가 모셔져 있고, 미륵보살 좌측에는 가섭(迦葉) 존자가 모셔져 있다.
 
대웅전에는 보현보살과 문수보살 대신에 코끼리상과 사자상이 설치되어 있다. 부처님을 바라보고 좌측 천장 대들보에는 돼지 모양의 꼬끼리상이, 우측 천장 대들보에는 사자상이 있다. 꼬끼리상은 보현보살을 의미하고 사자상은 문수보살을 의미한다. 코끼리 형상으로 보기에는 너무 닮지 않아서 코끼리라고 하기에는 이상하지만, 코끼리를 조각했던 신라 장인은 코끼리를 본 적이 없어서 코가 조금 긴 돼지 형상처럼 조각되어 있다고 한다.
 
쌍탑 1금당 형식의 대웅전 뜰에는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다. 삼층석탑인 석가탑은 국보 제21호로, 다보탑은 국보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두 탑은 불국사의 사상 및 예술의 정수이다. 『법화경』에 근거하여 세워진 이 탑은 영원한 법신불인 다보여래와 보신불인 석가모니불이 이곳에 상주한다는 깊은 상징성을 가진 탑이다. 다보탑에는 사자상이 원래 4개가 있었는데 지금은 한 개만 남아 있다. 십원짜리 동전에도 들어 있는 사자상이다.
 
대웅전 바로 뒤에 있는 무설전(無說殿)은 불국사의 여러 건물 가운데 제일 먼저 만들어진 건물이다. 670년(문무왕 10)에 이 건물을 짓고 문무왕은 의상과 그의 제자 오진, 표훈 등 몇 명의 대덕(大德)에게 『화엄경』의 강론을 맡게 하였다. 이 건물도 1593년 임진왜란 때에 불탄 뒤 1708년(숙종 34)에 중건하여 1910년 이전까지 보존되었으나, 그 뒤 허물어진 채 방치되었다가 1972년에 복원하였다. 경전을 설법하시던 강당인데도 현판은 설한 바가 없다는 무설전(無說殿)이다. 금강경에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법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현판에 담고 있다. 강을 건너면 배를 버리고 가야지 배를 짊어지고 가서는 안된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무설전 뒤의 한층 높은 언덕에 관음전이 있다. 751년 김대성이 6칸으로 지었던 것을 1470년(성종 1년)에 중수하였는데, 1593년 임진왜란의 병화로 불타버렸다. 그 직후 1604년에 해청(海淸)이 중창하였고, 1694년(숙종 21년)과 1718년에 다시 중창하였다. 원래 이 관음전 안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었다. 이 관음상은 922년에 경명왕비가 낙지공(樂支工)에게 명하여 전단향목(栴檀香木)으로 만든 것이었다. 개금 기록으로 보아 18세기 중엽까지는 이 관음상이 있었음이 틀림없는데, 언제 관음상이 없어졌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는 1973년의 복원 때 새로 조성한 관음입상을 봉안하고 있다.
 
관음전 아래 서편에 비로전이 있으며,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다. 이곳에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을 따로 건립한 것은 화엄경에 의한 신앙의 흐름이 불국사의 성역 안에 자리 잡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비로전은 751년 김대성이 18칸으로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60년(현종 1년)에 중수하였으나, 조선 말에 무너져서 터만 남아 있었다. 1973년의 복원공사 때에 현재의 건물을 지어서 극락전에 임시로 안치하였던 국보 제26호인 금동비로자나불 좌상을 이곳으로 옮겨 봉안하였다.
 
입구에서 청운교와 백운교 서쪽에 있는 연화교와 칠보교를 올라 안양문을 지나면 극락전에 이른다. 아미타불이 있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곳이다. 극락전을 중심으로 하는 이 일곽도 751년에 지어졌고, 그 당시에는 회랑을 비롯하여 많은 건물과 석등 및 석조물들이 있었다고 한다. 안양문은 임진왜란 때 불탄 뒤 1626년(인조 4)과 1737년(영조 13)에 중창하였다. 안양은 극락의 다른 이름이며, 안양문은 극락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다. 안양문을 넘어서면 극락전에 이른다.
 
1970년대까지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불과 비로자나불의 두 불상이 안치되어 있었는데, 비로자나불은 원래 대웅전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중수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던 것으로, 지금은 비로전으로 옮겨 모셔져 있다. 극락전 안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국보 제27호로 지정되어 있다. 극락전 현판 바로 뒤의 공포에는 돼지 형상을 조각해 놓아서 복돼지라고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19년 기해년(己亥年)에는 황금돼지해라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복을 빌었던 곳이다.
 
이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3열로 지어 쌓은 계단이 있다. 그 각각은 16계단이어서 모두 합하면 48계단이 된다. 이것은 아미타불의 48원(願)을 상징한 것으로, 48원을 성취하여 극락세계를 건립한 법장비구(法藏比丘)의 뜻을 기린 것이다. 극락전 뒤쪽에는 나한전이 있고 여래의 사리인지 스님의 사리인지 모르는 사리탑이 있다. 부도 형태로 세워져 있으나 조각이 멋지다. 나한전 입구에서 바라본 당우들의 건물 선과 오색 연등이 멋지다.
 
칠보교 앞에는 두 쌍의 간주(竿柱)가 서 있고 거대한 석조(石槽)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불국사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사리탑(舍利塔) 외에도 5기의 부도가 있다. 또한, 경내가 사적 제50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95년 유네스코(UNESCO)에서 제정한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참고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불국사의 역사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국사 홈페이지(http://www.bulguksa.or.kr/)에 따르면, 불국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서기 528년(신라 법흥왕 15년)에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비로자나 부처님과 아미타 부처님을 주조해 봉안했고, 670년(신라 문무왕 10년)에는 무설전을 새로 지어 화엄경을 강설하였으며, 그 후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탑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기록인, 《불국사 사적(事蹟)》에는 이보다 앞선 눌지왕 때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경덕왕 때 재상(宰相) 김대성에 의하여 크게 중창되었다 했다. 처음에는 소규모로 창립되었던 불국사가 경덕왕 때의 재상 김대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불국사의 거대 가람으로서의 위용은 임진왜란 시기인 1593년 5월 의병과 승군의 활동으로 많은 피해를 보고 복수심에 사로잡힌 왜군의 방화와 파괴 등으로 큰 피해를 입어 2,000여 칸의 대가람이 전소되는 고난을 겪게 되었다. 이후 전란의 피해가 복구되면서 불국사도 국가의 지원 및 스님과 신도들의 노력에 의해 1604년(선조 37년)경부터 복구와 중건이 시작되어 1805년(순조 5년)까지 40여 차례에 걸쳐 부분적인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1805년 비로전 중수를 끝으로 중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후 조선 후기 국운의 쇠퇴와 더불어 사운(寺運)도 쇠퇴하여 많은 건물이 파손되고 도난당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대규모의 개수공사를 실시하여 다보탑의 해체보수, 법당의 중수 등을 실시하였는데, 이때 다보탑 속에 있던 사리장치(舍利藏置)가 행방불명되었고 공사 와중에 유물의 완벽한 복원과 보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은 일제의 문화정책의 전시물로서 수난을 겪었다. 8·15 광복 후인 1966년 석가탑의 해체 복원 등 부분적 보수가 있었다가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구성되고 1970년 2월 공사에 착수, 1973년 6월 대역사를 끝마쳤다. 이 공사로 주춧돌과 빈터만 남아 있던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 경루(經樓), 회랑(廻廊) 등이 복원되었고, 대웅전, 극락전, 범영루, 자하문 등이 새롭게 단장되었다. 2008년 12월에서 2009년 12월까지 다보탑 해체 수리 작업이 있었고 2012년부터 2015년 석가탑 해체 복원 작업이 이루어져 사리장엄구가 재봉안 되기도 했다.(출처 : 불국사 홈페이지)
 

▲ 석축과 백운교/청운교
▲ 불이문(不二門)
▲ 범종각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자하문과 백운교 및 청운교
▲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안양문과 연화교 및 칠보교
▲ 대웅전 영역 회랑- 회랑 끝 뒤에 보이는 전각이 관음전
▲전면 5칸 측면 5칸의 공포가 화려한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 - 가운데 문이 넓다.
▲ 다보탑
▲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탑 안에 같이 앉아 계시는 묘법연화경 즉, 법화경의 내용을 표현한 탑
▲ 석가탑으로 불리는 삼층석탑
▲ 맨 왼쪽부터 아난존자, 제화갈라보살, 석가모니불, 미륵보살, 가섭존자
▲ 보현보살을 상징하는 코끼리상 - 코가 조금 긴 돼지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다.
▲ 문수보살을 상징하는 사자상
▲ 대웅전 우물마루
▲ 자하문에서 내려다 본 청운교와 백운교
▲ 자하문 내부 장식
▲ 아래쪽으로 늘어진 자하문 대들보 - 달을 상징
▲ 위쪽으로 굽은 자하문 대들보 - 해를 상징
▲ 무설전
▲ 무설전 - 주심포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
▲ 무설전 안에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 무설전 뒤편
▲ 비로자나불을 모신 비로전
▲ 비로전 옆에 있는 사리탑
▲ 관음전으로 오르는 계단
▲ 관음전
▲ 관음전에서 바라본 무설전과 대웅전
▲ 16분의 아라한을 모신 나한전 - 아라한은 소승불교의 최고 경지의 수행자
▲ 나한전 입구에서 바라본 극락전 뒤편
▲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
▲ 2019년 기해년(己亥年)에 세운 안내문
▲ 극락전 현판 뒤에 있는 복돼지 형상 공포
▲ 극락전 정문인 안양문
▲ 안양문으로 올라가는 연화교 및 칠보교
▲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48계단
▲ 당간지주
▲ 석조(石槽)
▲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