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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여행 /문화유산탐방

강화 용흥궁에 다녀오다.

아진돌 2024. 3. 16. 10:13

2024년 3월 10일 대전 한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2024년 3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21번길 16-1(강화읍 관청리 441)에 있는 용흥궁(龍興宮)에 다녀왔다.

 

용흥궁은 강화도령으로 잘 알려져 있는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재위 1849∼1863)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원래는 초가집이었으나,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1853년(철종 4년) 강화유수 정기세(鄭基世)가 현재와 같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용흥궁공원 옆에 위치한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바로 아래쪽에 있다. 왕이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의 용흥군(龍興宮) 현판이 있는 솟을대문을 지나면 안채에 해당하는 내전이 있고 바로 앞에는 사랑채가 있다. 내전 뒤로는 외전이 있고 외전 옆에는 철종이 살았던 집이라는 비석이 있는 용흥궁잠저비각이 있다.

 

문화관광해설사께서 조선 영조와 정조 시대부터 철종이 즉위하기까지의 정치적 상황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많은 것을 배웠다. 강화군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용흥궁을 소개하는 내용을 따르면, 철종은 어렸을 때 이름이 원범(元範)이고,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恩彦君)의 손자이며,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염씨(廉氏)이다. 1844년(헌종 10년) 회평군(懷平君)의 옥사에 연루되어 가족과 함께 강화도에 유배되어 학문과는 거리가 먼 농부로 살았다. 당시 영조의 혈손으로는 헌종과 원범 두 사람뿐이었다. 1849년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의 명으로 19세의 나이로 왕위를 계승하였다.(인용문헌: 강화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 용흥궁).

 

용흥궁은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안채에 해당하는 내전은 정면 7칸, 측면 5칸이며, 외전은 정면 6칸, 측면 2칸인 ㄱ자형 집이다. 용흥궁은 창덕궁의 연경당,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참고문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웅진출판, 1997.; 강화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재인용)

 

▲ 경복궁 아미산처럼 조성된 용흥궁공원
▲ 용흥궁공원에서 바라본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고려궁지로 가는 길에 조성된 벽화
▲ 용흥궁 입구
▲ 내전(안채) 출입문
▲ 출입문 안쪽
▲ 용흥궁 내전(안채)
▲ 내전 옆의 우물터
▲ 용흥궁 외전
▲ 용흥궁 잠저비각
▲ 남쪽 출입문과 담장
▲ 사랑채와 남쪽 문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올라가는 길
▲  용흥궁 공원 안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