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일)에 대전 한밭문화원의 5월 문화탐방 활동으로 두 번째 탐방지로 경기도 남양주시 광릉수목원로 354(진접읍 부평리 산 99-2)에 있는 광릉에 다녀왔다. 광릉은 조선 세조(1417-1468, 재위 1455-1468)와 정희왕후 윤씨(1418∼1483)의 왕릉이다. 봉선사 탐방을 마치고 광릉 입구에서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들은 후 정자각까지 들어가 둘러보았다.
광릉은 1468년 세조가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조성되었고, 15년 후 정희왕후가 세상을 떠났을 때 동쪽 언덕에 능을 만들고 동광릉으로 정하려 하였으나, 광릉과 같은 영역에 있다고 하여 정희왕후의 능도 광릉으로 합치고 제사를 지내는 정자각(丁字閣)을 두 능 사이에 옮겨 지었다고 한다. 이로써 광릉은 조선시대 최초로 동원이강(同原異岡) 형태의 능이 되었다고 한다. 동원이강릉은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이 조성된 능을 말한다.
광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릉의 하나이다. 이곳 광릉은 다른 능에 비해 원형이 많이 훼손된 듯하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지는 향로(香路)와 어로(御路)가 없고, 홍살문 옆에 있어야 할 판위(板位)도 보이지 않는다. 국가유산 청에서 발행한 광고지에서는 향로와 어로는 한국 전쟁 때 소실된 것으로 보인다고 적고 있다.
문화재청이 5월 17일부로 국가유산청으로 바뀌면서 국가문화유산 포털도 국가유산포털로 바뀌어 있다. 국가유산포털에 소개된 광릉에 관한 소개 글을 보면,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형인 문종이 세상을 떠난 후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계유정란을 일으킨 후에 1455년에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세조는 군제 개편, 집현전 폐지 등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토지제도 정비, 서적 간행 등 많은 업적을 남기고, 1468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희왕후 윤씨는 조선시대 최초로 수렴청정을 시행하였다. 수렴청정은 나이 어린 임금을 대신해서 왕대비가 정치를 대신하는 것으로 당시 성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므로 정사를 돌보게 된 것이다. 정희왕후는 1483년(성종 14년)에 세상을 떠났다.
왕의 유언에 따라서 무덤방은 돌방을 만드는 대신 석회다짐으로 막았고,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못하게 하였다. 돌방과 병석을 없앰으로써 백성의 고통과 국가에서 쓰는 돈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무덤 주위에는 난간석을 세우고 그 밖으로 문석인, 무석인, 상석, 망주석, 호석, 양석을 세웠다. 난간석의 기둥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겼는데 이는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광릉밖에 없으며, 글자로 난간석에 표시하거나 나중에는 24방위까지 새겨 넣게 된다.(인용문헌: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 광릉)
세조는 세종과 소헌왕후의 8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단종의 숙부이다. 1428년(세종 10)에 진평대군(晉平大君)에 봉해졌다가 세종 말년인 1445년에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고쳤다. 단종의 아버지이고 세조의 형인 문종이 즉위한 지 2년 3개월 만에 죽고, 어린 왕인 단종이 아무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동안 먼저 정권을 잡은 사람은 동생인 안평대군이었다. 수양대군과 그의 일파는 1453년(단종 1) 10월에 계유정난을 일으켜 스스로 영의정에 올랐다가, 1455년(단종 3) 윤유월 왕위에 올라 조선의 7대 왕 세조가 되었다.
할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이 왕권을 강화했던 것처럼 세조는 국왕 중심 통치의 편의를 위해 강력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펼치며 왕권을 강화하였다. 세조는 유교 윤리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왕위에 올랐다. 그래서 자신을 공격하는 명분과 수단이 된 유교 대신 불교를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카와 형제 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자신의 악행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 버리고 위안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한밭문화원의 2024년 7월 문화탐방지로 결정되어 있는 상원사에 가면 세조와 관련한 일화들을 접하게 된다. 말년에 피부병으로 고생했던 세조는 전국의 이름난 사찰들을 찾아다니며 불공을 드렸다. 강원도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上院寺)에는 세조에 관한 전설이 전해 온다. 문수보살이 동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세조의 몸을 씻어 주자 피부병이 나았는데, 이에 세조는 고마움의 표시로 상원사를 확장하고 목조 문수동자 좌상(국보 제221호)과 소리가 좋은 동종(국보 제36호)을 주조하도록 했다는 것이다.(참고자료: 다음(DAUM) 백과 조선국왕전 – 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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