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11일(일)에 대전 한밭문화원에서 주관하는 2024년 8월 문화탐방에 참여하여 첫 번째 답사지로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 327(왕대리 907-1)에 있는 세종의 능인 영릉(英陵)에 다녀왔다. 폭염의 날씨에도 관광버스 두 대로 80여명이 문화탐방을 다녀왔다. 폭염도 이길 수 있는 한밭문화원 문화탐방 프로그램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더운 날씨와 짧은 탐방 시간의 제약으로 옆에 있는 효종의 능인 영릉(寧陵)은 다녀오지 못했다. 한글 이름은 영릉으로 동일하지만 한자는 다른 영릉이 인접해 있다.
영릉(英陵)는 조선 왕조에서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추앙받는 세종(世宗)(1397-1450, 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昭憲王后)(1395-1446)의 합장릉이다. 하나의 봉분 아래에 두 분의 광을 마련한 동봉이실의 합장릉으로 조선왕릉 최초의 합장릉이다. 세종은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418년 큰형 양녕대군이 왕세자 자리에서 물러나자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두 달 후 태종의 양위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태종이 살아 있는 동안에 왕위를 양위 받았고, 재위에 오르신 후 4년 동안이나 태종이 살아 있었으며, 많은 형제들과 정도전 등을 제거하면서 왕권정치를 확립한 아버지 태종 덕택에 안정된 국정을 운영할 수 있었다.
세종은 왕위에 오른 후 세종 2년에 고려 때부터 시행하여 오던 집현전을 확대 및 개편하여, 청사를 짓고 많은 학자들을 등용하여 경전과 역사의 강론과 임금의 자문 역할을 수행하게 하였다. 재위 기간에 고유한 문자체계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셨고, 대마도를 정벌하였으며, 북방에 4군과 6진을 개척하여 북방 국경을 확장하였다. 천문학과 역법, 금속활자와 인쇄술, 도량형, 농업 등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켰고, 음악과 의례를 정비하는 등의 업적을 쌓았다. 황제의 나라 명나라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출 수 있는 역법 관련 연구와 이를 위한 천문학 연구를 대외국 비밀사업으로 몰래 추진한 세종의 백성과 나라 사랑의 정신과 뚝심은 대단한 것이다. 각종 악기를 정비할 때의 일화를 보면 세종대왕께서는 절대 음감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다.
영릉(英陵)은 200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의 왕릉 40기 중의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모두 42기의 왕릉이 조성되었는데, 이 중에서 북한에 있는 2개의 능인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참고로 능(陵)은 왕과 왕후와 대한제국 이후의 황제와 황후의 무덤이고, 원(園)은 후궁이나 종친 등 왕의 사친과 왕세자 및 왕세자빈과 황태자 및 황태자비의 무덤이다. 폐위된 왕(연산군과 광해군)과 왕족의 무덤은 묘(墓)라고 칭한다. 봉분 형식에 따라 단릉(單陵), 쌍릉(雙陵), 합장릉(合葬陵),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 삼연릉(三連陵)으로 구분한다. 지난 번 답사로 다녀온 광릉은 동원이강릉에 해당하고, 세종의 영릉은 합장릉, 효종의 영릉은 동원상하릉이다.
2009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많은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는 현재 세종대왕 동상이 있던 곳이 영릉의 입구였고, 주차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동쪽에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이 건립되어 있었고, 주차장이 넓게 마련되어 있었다. 입구 매표소에서 천변을 따라 걸어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고, 재실이 재실터로 표기되어 있던 원래 자리에 복원되어 있었다. 연지(蓮池)가 새로 조성되었고 금천교를 건너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가는 길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세 길로 조성했던 것을 향로(香路)와 어로(御路) 두 길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향로는 신도(神道), 어로는 어도( 御道)라는 용어가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역사문화관 입구에는 한글 ㅎ, ㅈ, ㅇ 자 형상의 문자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무슨 조형물일까 궁금했는데, 향심화 님께서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훈민정음”의 첫 글자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ㅁ 자는 어디 있을까요? 아는 분에게만 보인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는 여기서도 통한다.
참고로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인 영릉(英陵)에 관한 자료들을 정리하여 올린다. 영릉(英陵)은 세종대왕의 명성 만큼이나 유명한 왕릉이다. 이 묘는 예종 원년(1469년)에 태종의 능인 헌릉(獻陵) 서쪽에 있던 능을 이장한 후 합장릉으로 조성한 능이다. 세종은 당시의 최고 권위기관인 집현전 학사들로 하여금 풍수서를 연구시키기도 하고 풍수지리서를 간행 반포한 일도 있으며, 사신들을 통해서 풍수지리서들을 수입하기도 하였다.
세종께서 재위 시의 수릉지(壽陵地)로는 광주의 태종릉인 헌릉(獻陵) 서쪽에 정혈 되었다. 세종은 아버지인 태종의 옆에 영면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수릉(壽陵)이란 왕이 살아 있는 동안에 미리 마련해두는 무덤을 말한다. 태조(太祖)는 일찍부터 자기의 수릉지를 살펴보았고, 이러한 선례는 역대 왕들에게 계승되었다. 세종도 자신의 수릉을 상지(相地)하기 위하여 풍수인을 동원시켰다.
풍수인들이 선정한 세종의 수릉지는 태종의 능 서혈(西穴)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풍수인이었던 최양선은 수능 주혈이 감락(坎落)이고 곤수(坤水)라 흉지라고 주장하게 된다. 풍수인들이 면밀히 검토한 결과 감락(坎落)이 아니고 임락(壬落)이라고 바로 잡는다. 세종의 수릉지는 헌릉 서혈로 결정되었고 왕이 죽자 그 곳에 안장하였다(이상태. 1987. 조선초기의 풍수지리사상. 사학연구 제39호. 한국사학회).
세조 때에 영릉이 길지가 아니니 길지를 찾아 천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견이 다시 나온다. 세조는 서거정(徐居正)을 불러 물은 즉 그가 대답하여 가뢰되, ‘산수의 방위를 가지고 자손의 화목을 삼는 일에 대해서 신은 아는 바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천장(遷葬)을 하여 복을 얻으려 한다니 왕으로서 더 이상 무엇을 바라고 원하겠습니까?’ 그러자 왕은 ‘과인도 천릉할 생각이 없느니라’고 했다. 그러므로 세조 때는 천릉이 중지되었다. 그런데 예종 원년(1469)에 고경(古經) 즉, 청오경을 들어 다시 영릉을 개천(改遷)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예종은 이를 군신에게 논의하게 했고, 재상(宰相)을 각지에 보내 개장에 알맞은 길지를 찾아보도록 했다(무라야마 지쥰, 정현우 역. 한국의 풍수, 원저: 朝鮮の 風水).
예종실록에 따르면 영릉(英陵)은 지금의 영릉 자리에 있던 이계전, 이인손 등의 묘를 옮기게 한 후 광주 이씨 이인손의 묘 자리에 이장한 것이다. 영릉(英陵)에 대한 풍수인들의 견해는 크게 갈리고 있다. 최영주는 ‘신한국풍수’에서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세종의 영릉은 천하의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영릉으로 인해 조선 왕조의 국운이 1백년 더 연장되었다는 평이 나올 만큼 지관들 사이에서는 길지로 꼽힌다. 굳이 풍수지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영릉의 곡장(봉분 뒤의 담장) 뒤에 앉으면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마음의 평화는 물론 행복감에 빠져들게 된다. 코 끝에 와 닿는 바람은 내장까지 시원하게 씻어주고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은 인간이 꿈꾸는 유토피아의 세계, 바로 그 곳임을 일깨워준다(최영주, 신한국풍수)(이태호. 1999. 새로쓰는 풍수지리학에서 재인용).
이태호(1999)는 이천, 여주군에 기상이 출중한 산이 없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오방(午方)에 혈을 넘겨다 보는 규사(窺砂)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뛰어난 명당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영릉을 수강산약(水强山弱)의 형세라고 주장하고, 영릉이 자좌(子坐)이면 안산이 비게 되므로 계좌(癸坐)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산의 위치로 보아 자입수(子入首)에 계좌정향(癸坐丁向)으로 보고 있다(이태호. 1999. 새로쓰는 풍수지리학).
내가 보기에는 확실한 자좌오향(子坐午向)이다. 계좌정향으로 볼수도 있지만 조선초에는 풍수사들이 계좌정향을 꺼리고 있었다는 기록과 왕릉들이 자좌(子坐)로 자리한 것들을 보면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조선 초기에는 신(申)득수, 자(子)입수, 진(辰)파구로 이루어지는 신자진(申子辰) 삼합법에 따라 묘를 쓴 예가 많다. 비슷한 시기에 쓴 천안시 수신면의 한명회 묘에서도 신자진 삼합법에 따른 예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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